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입연기(入燕記)≫를 보면 청나라 연경에 연행사 일행으로 떠나는 사위 이덕무에게 장인이 베로 만든 적삼과 바지 두 벌 그리고 풍안경(風眼鏡) 하나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풍안경은 눈과 렌즈 사이의 공간을 막은 안경으로 먼지나 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한 요즘의 고글과 비슷한 것입니다.
조선 후기 오군영의 하나인 금위영(禁衛營)은 말 타는 기병이 많았습니다. 이 금위영에 지급된 군수물자 중 풍안경은 무려 530면으로 기병에게 한 개씩 주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말을 타고 달리면 흙먼지가 생겨서 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 풍안경은 기병대에게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엔 석회가루나 쇳가루를 방사해 적의 시력을 상실케 하는 화학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때도 꼭 필요했습니다. 또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로도 많이 주었다지요.
추사 김정희의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습니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발문(跋文) 곧 책이나 그림의 끝에 그림의 뜻이나 그린 뜻을 간략하게 적은 글이 보입니다.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세한도'는 59살 때 그린 추사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가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 버렸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입니다. 한 채의 초가에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린 작품으로 문인화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갈필(渴筆) 곧 빳빳한 털로 만든 붓으로 형태의 대강만을 간추린 듯 그려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용서치 않는 강직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