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펴낸 여성백과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면 피부관리라 볼 수 있는 도화면(逃花面)과 면지법(面脂法)이란 것이 있습니다. 먼저 도화면은 “북제(北濟) 노사침의 아내 최씨가 봄날 복사꽃을 흰 눈(雪)에 섞어 아이들 얼굴을 씻기면 빛이 나고 윤기가 있으며, 홍화(紅花)를 따다가 얼굴을 씻기면 고와진다고 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면지법'을 보면 “겨울에 얼굴이 거칠고 터지는데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봉하여 4~7일쯤 두었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을뿐더러 윤이 나고 옥 같아진다. 얼굴과 손이 터 피가 나면 돼지기름에 괴화(傀花) 곧 회화나무 꽃봉오리를 섞어 붙이면 낫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의 아스트린젠트와 비슷하며 “괴화 콜라겐 자외선차단 영양크림”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여성 한복이 원래 여러 겹의 속옷과 더불어 많은 옷을 입어 불편했겠다고 합니다. 또 남성 한복도 속저고리에 적삼, 배자, 두루마기들은 입어 많은 듯합니다만 따지고 보면 서양옷도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 한복의 겹쳐 입기보다 엄청난 겹쳐입기를 하는 복식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 헤이안시대(794~1192)의 귀족복식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무려 25번이나 겹쳐 입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비단을 수없이 겹쳐 입는 것이니 당연 그 무게도 상당하지 않을까요? 그런 옷을 입고 자리에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가 어렵고 급하게 이동하려면 기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한 세미나에서 일본 학습원여자대학(學習院女子大學) 마쓰다(增田美子) 교수가 밝힌 것입니다. 우리 한복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이 한복의 계승, 발전을 막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