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현재 정동극장이 있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명전(重明殿)”이 있습니다. 중명전은 지난 1900년 경운궁(덕수궁) 안에 2층으로 지어져 고종이 외국 사신들을 만나거나 잔치를 베푸는 곳으로 사용된 곳이지요. 1904년 경운궁의 주요 전각에 불이 나자 고종은 이곳으로 옮겨 1907년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까지 살았습니다. 또 광무 10년(1906)에 황태자인 순종과 윤비와의 가례가 이곳에서 있었지요.
하지만, 이 중명전은 1905년 일제와 을사오적 등에 의해 민족사의 치욕인 ‘을사늑약 (乙巳勒約)’를 당한 곳입니다. 원래 중명전의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으로 경운궁 궐내에 있던 건물이었으나, 경운궁과 중명전 사이에 돌담길이 생기면서 경운궁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문화재청에 의해 올해 말까지 보수· 복원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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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83. 아기들의 옷, 배냇저고리와 두렁이, 풍차바지바지 2006/05/16
옛날 갓난아기들이 입었던 옷은 배냇저고리와 두렁이, 봇뒤창옷입니다. 이중 배냇저고리 (깃저고리)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입는 옷으로 깃을 달지 않고, 고름도 몇 가닥의 실로 만들어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듭니다. 또 두렁이는 어린 아이의 배를 둘러주는 치마 같은 옷이며, 봇뒤창옷은 아기집에서 떨어져 나온 뒤 입는 큰 옷이란 뜻으로 배냇저고리의 제주도 말입니다.
아기가 삼칠일이 지나면 배내옷을 벗고 저고리와 풍차바지, 개구멍바지를 입기 시작합니다. 풍차바지(십자바지)는 뒤가 길게 터지고, 그 터진 자리에 풍차(좌우로 길게 대는 헝겊 조각)를 달아 지은 바지입니다. 뒤를 튼 까닭은 아기가 용변을 볼 때 편리하도록 한 것으로 돌 때까지는 여자 아이에게 입히기도 했습니다. 돌이 지나면 남아 3-5세까지 입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개구멍바지'는 풍차를 달지 않는 것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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