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의 피붙이 사이 혼인은 제2대 혜종(惠宗)이 맏공주를 아우 소(昭)의 아내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초기 김종서(1390~1453)· 정인지(1396~1478) 등이 쓴 ≪고려사(高麗史)≫ <충선왕세가(忠宣王世家)>를 보면 “문무양반들은 동성혼인(同姓婚姻)을 하지 말 것이며, 외가 사촌(四寸)도 구혼(求婚)할 수 없도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피붙이 사이의 혼인을 못하게 한 것이죠.
하지만, ≪고려사≫ <공민왕세가(恭愍王世家)>를 읽어보면 “공민왕 15년 (1366년) 왕씨를 익비(益妃)로 삼았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익비는 제8대 임금 현종의 아들인 평양공(平壤公) 기(基)의 13대손인 덕풍군(德豊君) 의(義)의 딸입니다. 이를 보면 고려왕조는 제31대 공민왕 때까지도 여전히 피붙이 사이의 혼인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 이능화, 동문선,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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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873. 봉숭아, 봉선화, 봉숭화, 무엇이 맞을까? 2006/11/29
예전에 여자들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곤 했습니다. 봉숭아 꽃잎과 이파리를 짓이겨 백반을 넣고 손톱에 묶은 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예쁘게 물들어 있었지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아들이 어렸을 적 시골에 갔을 때 아내가 봉숭아 물을 들이자 자기도 들여달라고 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봉숭아를 어떤 사람은 봉선화, 봉숭화라고도 말합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봉숭아의 본래 말은 봉선화(鳳仙花)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다 같이 쓰는 말입니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이 본래의 ‘봉선화’와 널리 쓰이는 ‘봉숭아’ 만을 표준말로 삼고 있습니다. ‘봉숭화’나 봉송아‘들은 표준말이 아닙니다. 발목 부근에 안팎으로 둥글게 튀어나온 뼈를 보통 ’복숭아뼈‘ 또는 ’봉숭아뼈‘ 라고 말하는데 이는 ’복숭아뼈‘도 ’봉숭아뼈‘도 아닌 ’복사뼈‘가 맞습니다.
참고 : “나만 모르는 우리말”, 조경숙, 김슬옹, 김형배 공저 / 모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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