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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빙고, 장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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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9. 7.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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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얼음을 저장했던 창고, 석빙고·장빙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9. 07. 01
 
 

 

 

          

         ‘삼국사기’ 신라 지증왕 6년(505) 11월 조에는 “처음으로 담당 관청 곧
         ‘빙고전(氷庫典)’에 얼음을 저장하도록 했다.”라는 기록이 있고 경주에 보물
         제66호 석빙고(石氷庫)가 있어 이미 이때부터 얼음을 저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려사’ 소사(小祀) 조는 얼음을 채취할 때 지내는 ‘사한제
         (司寒祭)’에 대해서 전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양에는 창덕궁 안에 있던
         내빙고(內氷庫)와 4대문 밖에 있던 외빙고(外氷庫) 곧 동빙고와 서빙고라는
         얼음을 저장하는 장빙고(藏氷庫)가 있었지요. 동빙고의 얼음은 제사에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토산물을 진상하는 데 썼습니다.

 

         이렇게 저장한 얼음은 임금이 종친과 대신, 각 관아에 빙표(氷票)를 주어
        장빙고에서 얼음을 타가도록 했는데 이것을 ‘사빙(賜氷)’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얼음을 채취할 때 백성들이 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안 정조임금은 재위
        13년에 내빙고를 없기까지 했습니다. 시원한 얼음을 즐기기에 앞서 백성의 고통을
        생각한 정조임금의 따스한 마음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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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984.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백성, 이탈리아에 노예로 팔려  2007/03/20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조선 백성이 일본에 끌려갔는데 가고시마 지역에만 3만
         700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과 유럽의 교역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많은 조선인이 여기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조선인 노예가 얼마나
         많았던지 국제 노예값이 폭락했을 정도입니다. 또 이 가운데는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팔려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의 삶은 당시의 호적대장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부 도자기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빼고는 대부분 비참하게
         살았고, 결국은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400년 전 그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강제로 창씨개명을 당하기까지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조선인 집단 주거지가 있었던 나에시로가와에 단군을 모신 ‘다마야마
         신사’를 세울 정도였습니다.

 

         참고 : HD역사스페셜5  "실리인가 이상인가, 근대를 향한 역사의 선택", 효형출판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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