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분을 꼽자면 누구나 세종대왕을 말합니다. 그만큼 그분은 우리의 삶에 끼친 공이 지대하지요. 그런데 세종대왕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정확히 알려면 세종실록 총서를 보아야만 합니다. 그에는 "태조 6년 정축 4월 임진에 한양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 에서 탄생하였으니”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4월 임진이라면 분명히 음력이었지요. 그러면 그날은 음력 4월 10일인데 양력환산기에 넣어보면 5월 9일이 됩니다. 그럼 우리가 아는 5월 15일과는 엿새 차이가 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서양 달력의 역사를 보면 로마 최고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력을 규범으로 BC 45년 로마력을 개정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는데 이 율리우스력이 전 유럽에 보급되어 16세기 말까지 쓰였습니다. 그래서 음력을 쓰던 동양의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고자 할 때 당시 서양의 율리우스력에 맞춰 환산해야 하기에 지금 양력 환산과는 조금 다른 날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종대왕 탄신은 15세기로 그때는 율리우스력을 쓰던 때여서 이것으로 환산하면 양력으로 5월 15일이 되는 것입니다.
“귀야 귀야 담바귀야 동래나 울산의 담바귀야 / 은을 주러 나왔느냐 금이나 주러 나왔느냐 / 은도 없고 금도 없고 담바귀 씨를 가지고 왔네” 이는 경상도 민요의 하나인 ‘담바귀타령’으로 일본에서 담배가 전래되어 동래, 울산 지역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는데 금과 은에 비교될 정도로 담뱃값이 비쌌음을 보여줍니다.
또 담배를 피우는 도구로 담뱃대가 있었는데 담배를 담아 불태우는 담배통과 물고 빠는 물부리, 그리고 담배통과 물부리 사이를 연결하는 설대로 구성되며, 설대가 긴 것을 장죽, 없거나 짧은 것은 곰방대라 부릅니다. 장죽은 혼자서 담배통에 불을 붙이고 물부리를 빨 수 없어서 불을 붙이는 하인이 따로 있었습니다. 하인을 둘 수 없는 서민은 그래서 곰방대를 쓸 수밖에 없었구요. 예전엔 담뱃대의 길이로 신분의 차이를 드러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