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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묻힌 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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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9. 10. 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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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조임금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낳은 장헌세자(사도세자, 1735~ 62)를 압니다. 장헌세자는 2살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지만 노론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등을 내세워 모함한 탓에 결국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었지요. 그 장헌세자 장조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 1735~1815)의 합장릉이 융릉(隆陵)인데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762년 영조는 28세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장헌세자의 시호를 사도(思悼) 곧 ‘세자를 생각하며 추도한다.’라는 뜻으로 지었고 ≪한중록(恨中錄)≫을 남긴 혜경궁 홍씨에게도 혜빈(惠嬪)이란 호를 내렸지요. 장헌세자의 능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에 있었는데, 정조가 임금에 오르면서 바로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1789년에는 이곳으로 묘를 옮겨 융릉이라 하였으며, 고종 때 의황제(懿皇帝)로 추존함과 동시에 어머니도 의황후(懿皇后)로 올렸습니다. 같은 사적 206호 안에는 장헌세자의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 합장릉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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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얼레빗)

975. 여성의 몸치장, 범발톱노리개   2007/03/11


노리개는 여성의 몸치장으로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 등에 다는 패물로 궁중에서는 물론 양반과 일반 백성들까지 널리 즐겨 쓴 장식물입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시대 귀부인들이 허리띠에 금방울이나 비단향주머니를 찼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 후기에는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자 옷고름에도 찼으며,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옷고름에 달았습니다. 궁중의식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달았고, 간단한 것은 평소에도 달았는데 양반들은 집안에 전해오는 노리개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범발톱노리개는 호랑이발톱 두 개를 마주 대어 둥글게 대고, 그 위를 은판으로 싸서 만드는데 호랑이가 악귀와 액을 물리쳐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랑이발톱을 구하기가 어려운 탓으로 범발톱노리개는 소뿔이나 은으로 대신 만들기도 했습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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