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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찾으려 말고 탑도 세우지 마라"

세상보기---------/사람 사는 세상

by 자청비 2010. 3. 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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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찾으려 말고 탑도 세우지 마라"
법정 스님 입적, ‘무소유’ 삶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스님이 11일 자신이 창건한 서울 성북2동 길상사에서 오후 1시51분 열반에 들었다.

길상사는 이날 "'무소유'의 지혜를 일러 주시고,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몸소 실천하시던 법정 스님께서 불기 2554년(서기 2010년) 3월11일 오후 1시 51분,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에서 원적(서거를 뜻하는 불교용어)하셨다"고 공식 공지했다.


길상사에 따르면 법정 스님은 이날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습니다. 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스님 저서에서 약속하신대로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줄 것을 상좌에게 당부했다.


법정 스님은 또 유언을 통해 그 동안 풀어 논 말빚 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기 위하여 스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법정 스님은 이와 함께 "평소에 말한 바와 같이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따라 길상사 측은 일체의 장례 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13일 오전 11시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다비할 예정이다. 조화나 부의금도 접수하지 않는다고 밝혔

 

다. 송광사는 법정 스님이 17년 간 머물면서 대표적 산문집 '무소유'를 집필한 곳이다. 법정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17년 간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수행하던 중에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마다하지 않고 차를 마시거나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법정 스님은 폐암 진단을 받고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요양해오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왔으며, 상태가 악화되자 이날 길상사로 급히 옮겼다.


'버리고 또 버렸던' 생애


<연합뉴스>


법정(法頂)스님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도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법정스님은 1990년대 초반 "나는 아마 전생에도 출가수행자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직관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금생에 내가 익히면서 받아들이는 일들로 미루어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법정 스님(속명 박재철 朴在喆)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54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집을 나선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대산으로 가기 위해 밤차로 서울에 내린 스님은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는다.


"삭발하고 먹물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바퀴 돌았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부목(負木.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부터 시작해 행자 생활을 했다.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박완일 법사(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이 함께 공부했다.


법정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4.19와 5.16을 겪은 스님은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 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던 법정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진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스님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겨울은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상태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지만,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강원도 오두막에 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법정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 할머니(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없이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한 후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법정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기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들을 위로했다.

 

산문인으로서 법정스님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우리 출판계 역사에도 기록될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남겼다. 스님은 해인사에 살 당시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가리켜 "빨래판같이 생긴 것이요?"라고 묻던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있는 한 한낱 빨래판에 지나지 않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옮겨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또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스님의 이런 원력은 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의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법정스님은 다른 종교와도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이밖에 조계종단과 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법정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고 1994년부터는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어왔다.


 

종교간 담장 허물었던 법정스님


법정스님은 불교계에서도 어른 스님이었지만 천주교나 개신교, 원불교 등 이웃 종교에 대해 담을 쌓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법정스님은 특히 지난해 2월 선종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아름다운 종교 화합의 모습을 보여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법정스님은 1997년 12월14일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해 축사를 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평화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했다. 

 

스님은 기고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한 생명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낡은 것으로부터 벗어남"이라며 "우리가 당면한 시련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움터야 한다"고 설파했고 메시지 중간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끝에 '아멘'이라고 적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또 이듬해 2월24일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자 1천800여명 앞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종교인의 자세'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열어 '무소유'의 정신으로 당시의 IMF 경제난국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법정스님은 2000년 4월28일 봉헌된 길상사의 관음보살상의 제작을 독실한 천주교 신자 조각가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덕분에 지금도 길상사 마당에 선 관음보살상은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닮았다.


이와 함께 법정스님은 천주교 수녀원과 수도원에서도 자주 강연했고, 그의 산문집과 경전 번역서들은 수녀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초기불교 연구로 유명한 일아 스님 등 일부 수녀 출신 비구니 스님들은 법정스님의 저술에 감명을 받거나 법정스님과 만난 후 비구니가 됐다는 출가이력을 소개한 바 있다.


'무소유' 법정 스님 주요 연표

▲1932년 10월 8일 =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출생
▲1954년 =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선사를 은사로 입산 출가
▲1956년 7월 15일 = 효봉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계
▲1959년 3월 15일 =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
▲1959년 4월 15일 =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화상을 강주로 대교과 졸업, 이후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1960∼1961년 =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
▲1967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
▲1972년 첫 저서 '영혼의 모음' 출간
▲1973년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주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 철폐 개헌 서명운동 참여
▲1975년 10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충격, 송광사 불일암으로 돌아감
▲1976년 대표 저서인 '무소유' 출간
▲1984∼1987년 송광사 수련원 원장
▲1985년 경전공부 모임 법사
▲1987∼1990년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정진
▲1993년 8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위원회 발족
▲1993년 10월 10일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인 파리 길상사 개원
▲1994년 1월 1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1994년 3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기념 첫 대중법문을 서울, 부산, 대구, 전주 등지에서 하며 지부 발족
▲1995년 김영한(법명 길상화)씨의 대원각 시주를 받아들여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조계종에 등록
▲1997년 1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취임
▲1997년 12월 14일 대법사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바꾸고 창건 법회
▲1998년 2월 24일 명동성당 축석 100돌 기념 초청 강연
▲2003년 10월 '맑고 향기롭게' 창립 10주년 기념 강연, 파리 길상사 개원 10주년 기념 법문
▲2003년 12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회주에서 스스로 물러남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입적

 


법정스님이 남긴 주요 어록


법정스님은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 여러 권의 산문집과 법문을 통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주옥같은 말을 남겼다. 특히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말은 스님이 설파하던 '무소유'의 정신을 압축한다.


1997년 길상사 창건 당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로 시작하는 창건 법문도 이러한 무소유 정신과 맞물려 널리 회자됐다. 그런가 하면 말년인 지난 2008년 낸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마지막 모습까지 귀감이 되기도 했다.

 


다음은 법정스님의 주요 어록.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산방한담' 중)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버리고 떠나기' 중)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홀로 사는 즐거움' 중)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있으면 합니다.(1997년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아름다운 마무리' 중)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아름다운 마무리' 중)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

 

 

산문집으로 되새기는 법정의 '무소유'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에서)


법정스님하면 떠오르는 단어 '무소유'. 법정스님이 1970년대 초반부터 쓴 글을 모아 1976년 펴낸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범우사)'를 비롯해 수십권의 책에서 한결같이 설파한 무소유의 정신은 무한경쟁과 탐욕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등불이다.


법정스님의 여러 산문집은 스님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격조있는 필치로 고된 일상에 지친 일반인을 위로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불교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즉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없다는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이런 청백가풍(淸白家風)의 무소유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라고 권한 스님의 글은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었다.


산문집 '무소유'에 수록된 1971년의 글 '무소유'에는 법정스님이 평생 수십권의 책을 통해 반복해 강조했던 무소유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시 3년 째 난초 화분 둘을 애지중지 길렀다는 스님은 장마 후 쏟아지는 햇볕 아래 화분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거처로 돌아간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의 집착을 뉘우친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스님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라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쓴다.


1992년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한번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간 스님은 1995년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이어 새천년을 앞둔 1999년 12월에 수상집 '오두막 편지'를 내놓는다.


'오두막 편지'에서 스님은 "현재 내가 몸담아 사는 산중 오두막은 여러가지로 불편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내 식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일곱 해째 기대고 있다. 어디를 가보아도 내 그릇과 분수로는 넘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이 오두막을 거처로 삼고 있다"고 썼다. 또 "'소욕지족(少慾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스님은 강원도 산골 생활 17년째가 되던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에 기고했던 수필을 모아 '아름다운 마무리'를 펴내 삶의 마지막에 선 노승의 마음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스님은 2007년 한차례 병으로 입원하면서 이미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길상사를 드나들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간다. 그때마다 마음이 개운치 않고 아주 무겁다. 말로는 무소유를 떠벌리면서 얻어 가는 것이 너무 많아 부끄럽고 아주 부담스러웠다. 늙은 중이 욕심 사납게 주는대로 꾸역꾸역 가지고 가는 꼴을 이만치서 바라보고 있으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스님은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스님이 말하는 '아름다운 마무리' 는 역시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해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은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법정스님의 첫 법문집인 '일기일회(一期一會, 2009년 6월 출간)'에도 무소유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다. 스님은 2008년 5월24일 여름안거 결제를 맞아 했던 법문에서도 '버리고 떠나기'를 강조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불교계 거목' 법정스님 입적 ‥ 생전에 추천한 50권의 책은?

 

<한국경제신문>

 

법정(法頂)스님(78)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도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법정 스님은 평소 "산중 오두막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때,즉 독서삼매에 빠졌을 때"라고 말해 왔다. 출가를 결심한 뒤 단박에 삭발하고 입은 승복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만 유일한 '소유물'이었던 책만큼은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애서가였다.


그런 법정 스님이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이 출간됐다. 법정 스님이 평소 법회나 기고문에서 언급한 책 가운데 300권을 고르고 2년여에 걸쳐 스님과 대화하며 이 중 50권을 추려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추천된 책의 주요 내용과 법정 스님이 인용하거나 언급한 내용 등을 소개하고 있다.


평소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법정 스님은 병중에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한다.


50권 중에는 종교책, 명상서적, 동서고금의 문학작품,환경 책,인권 관련서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이 포함돼 있다. 법정 스님이 경전이나 그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봤다는 《어린왕자》 《꽃씨와 태양》 같은 동화부터 소유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는 《톨스토이 민화집》,읽은 뒤 직접 현장을 찾았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해 온 《녹색평론》,인도 철학의 꽃이라 불리는 《바가바드기타》까지 일독을 권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제러미 리프킨의 《음식의 종말》 등도 추천목록에 올랐다. 국내서로는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 등 고금의 명저를 망라했다.

 

 

 

 

영혼의 피리 - 김영동.wma

 

 

 

 

영혼의 피리 - 김영동.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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