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노래자랑 30주년…최고령 MC 송해
예전엔 출연자들 잔뜩 긴장 요새는 먼저와서 끌어안아
평양ㆍ뉴욕ㆍ파라과이ㆍ중국 공연 뿌듯"
황해도 고향서 노래자랑하는게 소원"
<매일경제>
"사람 인(人)자 라는 게 오묘한 의미가 있어요. 서로가 버티는 건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상대하는 저분이 없으면 얼마나 적적할까. 사람들은 만나서 이야기를 자꾸 해야 합니다. 노래자랑도 서로 주고받는 거죠."
일요일 12시 '딩동댕' 소리와 함께 전 국민을 찾아가는 KBS1TV '전국 노래자랑'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과 함께 세월을 보낸 진행자 송해(83)는 팔순이 훌쩍 넘은 최고령 MC가 됐다. 84년 마이크를 잡았으니 올해로 26년째다. 지난달 26일 KBS홀에서 만난 그는 시대의 변화와 진행 철학, 사람 이야기를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펼쳐 보였다.
"사람이 만나서 노래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요." 지금까지 무대에서 만난 사람들만 3만명이 넘는다. 교통사고로 36번이나 수술을 받은 서산 처녀도 있고 앞을 못 보던 60대 장애인도 있다. 엄마와 같이 나온 세 살짜리 꼬마가 유학 간 아빠에게 "아빠 보고 싶어. 아프지 말고 빨리 와"라고 할 때를 추억하고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세 살짜리 꼬마에서 103세 고령자까지 보고 즐기는 프로예요." 매주 아마추어 출연자 15~16명을 무대에서 만나 덕담을 나누고 지역 특산물을 맛보고, 때에 따라서는 장단도 맞춘다.
사람들도 30년 새 많이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초창기 때는 열 명 중 여섯 명이 한복을 입고 나왔어요. 지금은 한복을 한 명 입을까 말까죠. 예전에는 모두 잔뜩 긴장했는데 지금은 무대 등장부터 흔들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예요."
단적으로 옛날에는 출연자들이 지나가면서 '송해 아니냐'고 속닥거렸지만 지금은 거리낌 없이 끌어앉고 볼에 뽀뽀한다며 웃었다. 그만큼 사회가 많이 개방됐다.
전국노래자랑을 지금까지 연출한 PD만 120명이다.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시어머니 120분을 모신 셈이죠."
현재는 연출가 3명을 포함해 무대와 음향 악단 스태프 60명이 곳곳을 누비고 있다. 연주가와의 호흡이 프로그램의 역동성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지역색도 그만큼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영호남 가면 확실히 화끈한 걸 느껴요. 충청도 가면 '아버지 저기 호박 굴러와' 그런게 아직도 묻어나요. 강원도 가면 아는 데도 가만히 있다가 덮치는 경우가 있고요. 서울ㆍ경기는 말 그대로 깍쟁이스러워." 그는 아리랑이 왜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으로 나뉘었는지 전국을 '유랑'하면서 체험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정말 잘 배열된 것 같아요. 지역마다 특별함과 재미가 있어요."
앞으로 더 찾아갈 곳이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방송 300회가 지나자 장소 고갈 이야기가 나왔죠. 그런데 3년 넘으니까 시승격 축하하러 와라, 광역시 생겼다고 와라. 지방자치제 되면서 반딧불이 축제 와라. 그런게 자꾸 생겨요. 앞으로도 뭐가 생길지 모르죠."
국경도 자주 넘었다. 그는 5대 사건으로 △평양 모란봉 야외 공연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인 파라과이 공연 △일본 일왕궁 옆에서 8ㆍ15 특집 공연 △미국 뉴욕 아이젠하워공원 방문 △한ㆍ중수교 17주년 기념 중국 공연을 꼽았다.
장수 비결에 대해서는 "20주년 지나면서 특별히 최장수 프로가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며 스태프들과의 호흡, 시청자들의 호응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10년 전 '20주년 특집' 당시를 회고하고는 벅차오르는 느낌을 감추지 않았다. 당시 전국 시장ㆍ군수들이 축전과 화환을 보내 KBS홀을 가득 채웠다.
백전노장으로서 자부심과 명예도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도 적잖았다. "마음에 안 맞는 상황이 생기고 그런 일로 고통을 받게 되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어요. 사람 욕심은 한이 없는데 끝까지 잘하고 싶어요."
최근 코미디 선배 배삼룡 씨 타계에 대해 "희극의 황제였지만 늘 초조하고 안정되지 않은 생활에다 너무 오랫동안 투병하셔서 안타깝다"고 말을 이었다. 자주 떨어져 있었던 가족에게도 미안하다. "집안에는 점수가 한 점도 없어요. 가족과 철따라 어딜 나가도 사람 없는 곳을 찾다보니 미안하죠."
주량이 소주 2병인 그는 술로 애환을 달래는 애주가다. "술처럼 정직한 게 없죠. 술이라는 게 잘하면 약주, 지나치면 도깨비장군이 되는 거예요." 앞으로 계획은 딱 한 가지다. "고향땅 황해도 재령에서 노래자랑 하면 정말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최장수 MC' 송해, "넘어지고 싶을 때 있었다"
[OSEN]
국내 최장수 MC인 송해가 스스로 실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KBS 1TV ‘전국노래자랑’ 30년을 맞이한 송해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한 지난 세월들을 돌아봤다.
30년 동안 ‘전국노래자랑’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송해는 “30년이란는 자체가 고맙다. 함께 보고, 참여하고, 응원하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함께 오셔서 구경하고 박수치고, 출연해 주시는 분들이 ‘전국노래자랑’의 꽃이자 재산이다. 이분들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송해는 “오늘 30주년 기자간담회 잊지 못하겠다”며 “많은 분들이 관람하고 즐거워야 하기 때문에 특히 야외에서 질서 유지에 많은 신경을 쓴다. 오래 전에는 무겁고 큰 확성기 설치했는데 거기 올라가 앉았다가 넘어지는 등 사고도 있고, 부상자도 발생했었다”고 전했다.
3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출연자에 대한 질문에 송해는 “출연자 중 가족단위로 나오는 사람들 있다. 103세 어머니와 85세 딸이 함께 나와서 엄마가 가사가 잘 생각 안나니 딸이 옆에서 일러주면서 불렀다. 한 세기가 모여 함께 의견을 나누며 무대 만든 것 잊지 못하겠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또한 “60~70%가 여자 출연자다. 고부갈등이나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고부가 함께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벽을 허물었다. 장애인이 나와서 활기차게 무대 꾸민 것도 기억에 남는다. 시각장애인 신년 초 나와서 기립박수를 받고 앙코르 요청도 있었다. 생방송 중 1분이 아쉬운데 삼창까지 했다. 진땀도 나고 했지만 그걸 계기로 장애인도 많이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국노래자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냐는 질문에 송해는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아니겠느냐. 물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내 맘대로만 되는 일이 아니니. 객석이 움직여주지 않고, 내 의도대로 잘 안 풀릴 때는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송해는 “하지만 그 실망과 생각하는 과정이 있어 단단해질 수 있었고, 여기까지 왔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1980년 11월 첫 막을 연 ‘전국노래자랑’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송해는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아나운서, 최선규에 이어 1988년부터 MC를 맡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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