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지붕킥 엔딩 "시끌시끌"

한라의메아리-----/주저리주저리

by 자청비 2010. 3. 20. 23:21

본문

 

지붕킥 엔딩 "시끌시끌"

 

 

엄청난 빗길 속에서 세경이 지훈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이윽고 라디오 뉴스가 나온다. 비날씨속에 공항로에서 8중추돌사고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장면이 바뀌고 3년이 흘렀다. 직장에서 승진을 앞둔 정음과 군 입대를 앞둔 준혁이 만난다. 벚꽃놀이 구경가자는 이야기 하다가 정음이 "이맘 때 쯤이었지" 라며 "만약 공항까지 바래다 주지 않았다면 …" 라고 말한다.

 

다시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질주하고 있는 차안. 마침내 세경은 지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인 세경은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외부와 차단된 둘 만의 공간에서 세경은 사랑을 말했고 지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애틋한 감정이 흐르는 그 안에서 세경은 벗어나기가 싫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


3월 19일 방송된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마지막회에서 마침내 이민을 떠나는 세경은 아버지와 동생 신애를 공항으로 먼저 보내고 지훈을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훈이 사무실을 비우는 바람에서 혼자 기다리던 세경은 책상에 메모를 남겨놓고 나온다. 지훈은 정음의 모든 사정을 알게됐고 주소까지 확인하고 대전에 내려가기 위해 사무실에 들렀다. 그런데 세경의 메모를 발견하고 황급히 뛰어나가 병원입구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멈칫거리고 있던 세경을 만난다. 지훈은 대전 가는 길에 바래다주겠다며 빗길에 공항로를 질주했다. 그 안에서 세경은 지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았다. 이별을 고하는 듯 하지만 이별이 두려운 그녀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바람대로 시간이 멈춰서 버렸다.

 

공항에서 세경을 기다리는 신애와 아버지, 그들의 떠남을 슬퍼하는 정해리, 산골에서 도망쳐 성북동에서 함께 했던 시간, 슬픔과 행복 웃음의 순간이 신세경의 멈춰버린 시간과 함께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 프로그램의 PD는 종방연 자리에서 "뒤늦은 사랑의 자각을 극대화한 것이다"며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 장면은 세경과 지훈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다소 어처구니 없는 엔딩일 수 있다. 끔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냉혹한 현실이지만 어차피 드라마인데 해피엔딩으로 끝내주면 어때?"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듯 싶다. 그동안 고생한 세경이 안타까워 더욱 그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 프로그램 초반에는 전혀 안보다가 '빵꾸똥꾸' 논란이 터지면서 드문드문 보기 시작해 요 며칠동안은 거의 본방사수에 매달리며 결말을 궁금해했다.


마침 종방일은 제삿날이었다. 모처럼 형제와 가까운 일가 어른들이 모여 있어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엔딩방송을 봐야 했기 때문에 몰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한장면 한장면 놓치지 않고 본 결말은 다소 허무하다는 느낌이었다. 해리의 울부짖음에 안쓰러움을 느꼈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 느낌은 그동안 지붕킥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애잔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아마 '죽음'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훈의 차가 빗속을 오랫동안 질주하는 모습에 "사고가 발생해 이민을 가지 못하고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들려오는 라디오의 뉴스멘트. 그순간 탐미주의를 떠올렸다. 그리고 단순한 사고사-지훈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경만을 위한 것일 수 있다-일까? 자살-세경의 사랑 고백에 지훈도 동의해서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 된다-이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어쨌든 그동안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가지도 내세우지않고 인내하며 베풀기만 했던 세경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마지막 바람을 이야기 했고 모든 것을 가졌다. 사실상 세경과 지훈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사랑이 잠시나마 이뤄질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PD는 세경의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경지로 끌어 올렸다. 구구절절한 수만 마디 사랑의 표현과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한 뒷얘기가 아닌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장치로 세경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됐다.


그러나 대중문화 특히 시트콤에는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 탐미주의인 듯 하다.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예사조 앞에서 극의 개연성 대중성 시청자의 기대는 내버려도 좋을 가치였다. 그러나 지붕킥은 지금까지 6개월여동안 현학적이거나 고고한 예술성을 내세우지 않고 대중의 수준에 맞춰 잔잔한 감동과 안타까움을 주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결말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탐미주의는 대중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붕킥 종방에 대한 논란은 인터넷으로 계속 달궈지고 있다.


어쨌든 '지붕킥'은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한동안 '지붕킥'을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다. 이미 오늘 하루종일 지붕킥 결말과 관련해 '신세경 귀신설' '신세경 연년생 동생' '신세경 수험표' '세경의 죽음을 암시한다는 로베르토 인노첸티 '마지막 휴양지'' '지옥에서 온 식모 세경' 등 '지붕뚫고 하이킥'의 연관 검색어들이 한나절동안 포털사이트를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다.

 

<세경의 마지막 독백>

 

검정고시 꼭 보고 싶어서요. 대학도 꼭 가구….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가는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이는,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고,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 깨달았거든요. 그래도 떠나가기로 하고는 좀 힘이 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 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에게 그동안 맘에 담아둔 말을 꼭 한번 마음껏 해보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와가나요?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

 

 

'한라의메아리----- > 주저리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안함 사고의 진실 언제 밝혀지나  (0) 2010.04.01
답답함  (0) 2010.03.24
모든 인간은 중요한 존재다  (0) 2010.02.19
River flows in you  (0) 2010.01.14
남자의 자격  (0) 2009.12.0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