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때만도 못한 MB정부, 97년 자료 좀 봐라
[아는만큼 보이는 법 60] 교육 관련 법령을 통해 본 체벌 논란
오마이뉴스
서울시 교육청, 경기도 교육청의 학교 체벌금지 방침이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반기를 들었다. 이른바 '학교 문화 선진화 방안'이 그것이다. 교과부의 방안을 살펴보니 요지는 이렇다. '학생인권조례와 전면 체벌금지로 일선 학교에 혼란이 오고 있다. 운동장 돌기, 팔굽혀 펴기 등 간접체벌은 허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치고 일선 학교의 학칙을 개정하도록 하겠다.' 직접 체벌은 안 되더라도 간접 체벌은 허용해야 한단다. 정말로 선진화를 위해 체벌은 필요한 것일까. 선입견을 버리고 법대로 한 번 따져보자. 법은 체벌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그 단서를 찾기 위해선 법전을 봐야 한다. 헌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법령에서 교육, 특히 체벌과 관련된 조항을 정리해본다.
헌법은 '교육받을 권리', 법률은 '인권 존중' 강조
▲ 교문앞 체벌
먼저 법중의 법, 최상위법인 헌법이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10조), 교육받을 권리(31조)를 적어놓고 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⑥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헌법은 교육받을 권리와 관련된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 법률로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등이 있다.
<교육기본법> 제12조 (학습자)
①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
② 교육내용·교육방법·교재 및 교육시설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③ 학생은 학습자로서의 윤리의식을 확립하고, 학교의 규칙을 준수하여야 하며, 교원의 교육·연구활동을 방해하거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
여기까지는 체벌과 관련된 근거조항이 없고 교육에 관해서는 권리, 인권, 존중, 보호와 같이 좋은 말만 나온다. 다만 학생이 학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규정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을 보면 교육상 필요한 때 '징계'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는 조항이 나온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 (학생의 징계)
①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 다만, 의무교육과정에 있는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다.
②학교의 장은 학생을 징계하고자 하는 경우 해당 학생 또는 학부모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적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제18조의4 (학생의 인권보장)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여기서 징계란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과는 아주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 징계를 고통이 덜한 간접체벌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다만 '기타의 방법'이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참고로 국제인권조약중의 하나인 <유엔아동권리 협약>(우리나라는 1991년 비준)은 국가가 아동을 보호할 책임과 국제적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아동을 보호대상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권리주체로 인식하고 있다.
1997년 '체벌금지' 위해 교육관련 법령까지 정비했는데
▲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니코틴 측정기보다 체벌측정기를 먼저 도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볼 게 있다.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이 만들어진 배경 말이다. 이는 체벌 문제를 푸는 데 열쇠가 될 수 있다.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헌재)의 2006년 7월 27일자 결정문(2005헌마1189)을 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길게 인용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체벌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가장 효과적인 교육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근대에 이르러 많은 교육사상가들에 의해 체벌이 근본적인 비난을 받게 되면서 점차 완화과정을 걷게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일부 주나 소수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체벌이 비인간적이고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 등으로 법으로 금지하는 경향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통념도 체벌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용적이었는데, 해방 후 아동중심교육이념에 의거하여 체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아울러 청소년들의 반사회적, 반윤리적 행동, 폭력범죄의 증가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체벌에 대한 찬반 논쟁이 심화되었다.
이에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는 1997. 6. 2.자 보고서에서 체벌은 "21세기를 살아가게 될 신세대의 감각에 맞는 효과적인 생활지도 수단이 아니며 교육적 효과보다는 학생의 정신적 상처를 유발시키고 폭력을 재생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학생의 인간적 존엄성이 존중되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하여 학교 내에서의 체벌을 금지하고 이를 교육 관련법에 반영토록 한다"고 보고하였으며 그에 따라 교육관련 법령이 정비되기에 이르렀다.
즉 1997년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과거 체벌 중심의 교육을 극복하고 학생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정신이 깔려 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초중등교육법의 위임을 받은 하위법령인 시행령에는 징계의 종류를 규정해놓았다. '신체적 고통'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 (학생의 징계 등)
①법 제18조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하여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1의 징계를 할 수 있다.
1. 학교내의 봉사
2. 사회봉사
3. 특별교육이수
4. 퇴학처분
…
⑦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한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
조금 복잡해졌다.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을 함께 살펴 보자. 교장(또는 교장의 위임을 받은 교사)은 교육상 필요할 때 징계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를 할 수 있다. 기타의 방법이 문제인데 원칙은 훈육, 훈계이다. 그런데 시행령 31조 7항을 반대로 해석해보면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체벌은 '학생 징계' 방법이 아니다
▲ 현행법 해석상 학생 지도 방법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교육청 등 상당수 교육청이 조례 등을 통해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국에 적지 않은 학교의 교칙과 학교생활규정에는 체벌의 방식, 기준, 장소 등 체벌에 관한 규정이 적시돼 있다. 교육 관련법의 순서를 따지자면 헌법-법률-시행령-조례-학칙의 순서가 된다. 법으로 따져보니 묘한 현상이 나타난다. 상위법인 헌법과 법률은 학생의 인권과 교육받을 권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아래 법률의 위임을 받고 있는 시행령과 학교생활 규정에는 체벌의 근거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헌재의 결정을 다시 보자.
"징계방법으로서의 체벌은 허용되지 않으며, 기타 지도방법으로서도 훈육·훈계가 원칙이고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는 취지다. 이러한 법령들에는 시대적인 조류에 따라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기본적 인권을 특별히 존중하겠다는 입법자의 결단이 서려있다."
체벌은 징계와 다른 개념이다. 징계는 학교봉사, 사회봉사, 퇴학 등의 처분을 말하며 체벌은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이다.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기형적인 학생지도방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판례도 "법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징계방법으로서 체벌은 허용되지 않으며, 기타 '지도'의 방법으로서도 훈육·훈계가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교사의 체벌은 교육적 목적이 있다는 등의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행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학생에 대한 체벌은 금지하되, 교육상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학교장의 위임을 받아 학생의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도저히 학생의 잘못을 교정하기 불가능한 경우로서 그 방법과 정도에서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타당성을 갖춘 경우에만 학교장의 위임을 받아 교사의 체벌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선진국에서 금지 추세인 체벌 명시가 '선진화'?
비록 법원이 현행법의 해석상 체벌을 인정하고 있긴 하나, 앞뒤로 여러 가지 조건을 달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체벌이 허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사례 1] 유소신(가명) 교사는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반 학생들이 아침 자율학습시간에 지각이 잦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등 수업태도가 불량하여 주의를 시키기 위해 복도로 학생들을 불렀다. "너희들 고 3이 이렇게 정신을 못차려서 어떻게 하겠어? 수능도 얼마 안 남았잖아. 지금부터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겠다. 몸이 안좋은 사람은 빠져도 좋아." 그러자 3~4명 정도가 빠졌고 나머지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 교실로 들어가던 중 윤석(가명)군은 현기증을 일으켜 쓰러졌다. 그 과정에서 시멘트 바닥에 턱을 부딪쳐 하악골 골절상을 입었다.
사례에 나오는 지도방법이 교과부가 추진한다는 간접체벌이다. 그런데 위의 사례처럼 '앉았다 일어서기'도 2007년 법원은 방법과 정도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교육적으로 불가피하지도 않았고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 학생들을 교정할 수도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교과부의 방침을 다시 살펴보자. 간접체벌 추진 방침은 현행법과 판례의 해석으로 볼 때도 지극히 예외적이고 최후의 지도 방법으로 규정한 체벌을 명문화하겠다는 소리다. 그것도 법률에도 명시되지 않은 체벌을 시행령에서 규정하겠다는 말인데 적절한지 의문이다.
이것은 법률에 나와 있는 '기타의 지도 방법'을 체벌로 손쉽게 이해해 버릴 때만 가능한 일이다. 간접체벌이건 직접 체벌이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방법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에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이라고 이름 붙였다. 선진국에선 금지하는(혹은 최소한 금지하는 추세인) 체벌을 명시하는 방침이 어떻게 선진화인지 궁금하다. 또한 20세기말 체벌 중심의 교육을 마감하고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교육관련 법률의 제정 취지에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현상이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법률로 체벌금지를 못 박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와 교육감의 체벌 근절 의지, 교사들의 노력 모두 중요하다. 법률로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지 않은 한 시행령이나 교칙 개정을 통해 체벌을 합리화하려는 시도가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체벌도, 체벌을 둘러싼 논쟁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회가 시민단체와 함께 나설 일이다. 체벌 금지를 교사들의 학생 지도 포기나 방치로 이해하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폭력으로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인 행동 아닌가. 교과부는 간접 체벌 방침을 접고 체벌 금지 법률 제정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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