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과 무상급식
오마이뉴스
어르신, 애들 뺨 한대 갈긴 게 뭔 죄냐고요?
지난 17일 낮 12시경 서울시교육청에 갈 일이 있어 찾았더니 정문에 피켓을 든 노인이 한 명 서 있었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1인 시위를 하나 살펴보니,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불현듯 얼마 전, 뉴스 지면을 장식했던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소속 회원 30여 명이 무상급식 관련 예산을 처리하려는 서울시의회에 난입한 일이 그것이었지요.
▲ 서울시의회가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재의결할 예정인 가운데,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며 시의회 관계자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당시 이 단체 소속 회원들은 '무상급식은 빨갱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날 이들의 난동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니 또...' 정도의 느낌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유독 눈길을 끈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이들을 취재하려던 한 언론 기자를 상대로 한 집단 폭행 사건이 그것이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당시 기자의 주장에 의하면 의회로 난입한 한 분에게 어떻게 오게된 것인지 그 이유를 묻자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사람 아냐?"라는 말과 함께 느닷없이 얼굴을 가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여러 명의 노인들이 달려들어 욕설과 함께 발길질 등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피해 기자의 신고로 연행된 가해자들이 경찰서에서 했다는 진술입니다. 그는 자신의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노인이 애들 빰 한 대 갈긴 것이 죄가 되냐?"며 오히려 되물었다고 합니다. 황당한 폭행을 당한 그 피해자가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로부터 이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하철 무료 탑승 논란, 벌써 잊으셨습니까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동안 이 단체가 해온 일련의 행위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법치국가라면 강력하게 처벌받아야 할 일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단체의 행사를 강제로 무산시켰고 방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교수 시국선언이라든가 '희망과 대안' 창립 기념식, 그리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의 대한문 빈소 폭력사태 등 그 사례와 경우는 넘치고 흘러 내립니다. 생각나는 대로 언급해 봐도 그동안 이들의 왕성한 활동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불법 폭력 단체에게 서울시는 '사회취약계층(노인) 복지 및 권익 신장'을 위해 쓰라며 11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이는 2008년 광우병 관련 집회 당시 정부가 집회에 참여한 일부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거부한 사실에 비춰보면 '고무줄을 넘어 엿장수 가위질만도 못한 기준'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무상급식의 효시는 사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르신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종묘공원 일대를 비롯한 서울 시내 여기저기서 제공되는 각종 무상 급식은 사실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 주로 계시는 노인분들을 위한 '무상급식'입니다. 특히 지하철은 65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 '특혜'입니다.
최근 개통된 경춘선 이용자 숫자가 놀라울 정도라고 하는데 그중 40%는 65세 이상의 무료 공짜 승객, 바로 노인이었다는 뉴스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리꾼들은 "무상급식이 빨갱이 정책이라면 현재 지원되는 모든 무상급식과 무료 승차권도 다 폐지하고 노인 수당과 장기 요양 치료 등의 혜택도 모두 중단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부메랑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이를 타깃으로 던졌지만 결국 부메랑이 나에게 돌아오듯 지금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외치는 그 주장이 장차 복지 정책을 축소하려는 이 정부에서 또 다른 논리로 이용될 것임을 왜 깨닫지 못할까요?
▲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회원 수십명이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 주최 '2011년 4대강 예산저지와 공사 중단 촉구 농성 기자회견'이 열리는 곳으로 몰려와 "빨갱이들!" "국책사업을 왜 방해해!" 등 욕설과 고함을 지르자 경찰이 "합법적인 집회를 방해하면 안된다"며 제지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취임 초 논란을 일으킨 지하철 무상 이용에 대한 폐지 검토가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결국 거대한 선거표를 가지고 있는 노인분들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싸움은 싱겁게 끝났지만 당시 김황식 총리의 논리가 지금의 무상급식 반대 논리와 똑같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 김황식 총리는 '65세 이상 지하철 탑승권을 무료로 주는 것'과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과잉 복지'라며 "이러한 과잉 복지로 인해 (노인들이) 일 안하고 술 마시고 알코올 중독되고 한다"고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노인이라고 해서 다 노인수당을 주는데 '한 달에 몇 만 원의 노령수당을 왜 나한테 주느냐,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주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곁들이며 무상급식과 더불어 노인 수당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김황식 총리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어디서 많이 본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비판하는 그 논리입니다. 결국 분노한 어르신들의 노기가 표심에 미칠 영향을 인식해 이후 이 문제는 없던 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무상급식에 대해서 만큼은 반드시 무산시키겠다는 결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현명한 어르신이라면 지금 당장 무상급식을 주장해야
▲ 지난해 10월 4일 서울 성북구 숭인초등학교에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친환경 무상급식 시범실시' 배식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소위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이 입에 주로 달고 다니는 용어 중에 '빨갱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거치며 상대방을 공격하기 가장 쉽고 편한 것이 '빨갱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빨갱이라는 말을 누가 먼저 하느냐'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마치 서부시대, 먼저 총을 뽑는 총잡이가 이기듯 그들은 앞다투어 '빨갱이'라는 말로 먼저 상대를 규정하고 이후 자신들의 모든 폭력과 난동이 마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정의의 사도이기에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싫어하는 소위 '빨갱이 수법'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적이 셋이 있으면 일단 다른 둘과 연대하여 적 하나를 무찌른다. 그리고 적이 둘 남으면 다른 하나와 연대하여 하나의 적을 무찌르고 이후 적이 하나가 남으면 기회를 보아 나머지도 해치운다.'
웬 느닷없는 말인가 할 텐데 저는 현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과잉 복지 운운하는 흐름을 보면서 왜 위에 언급한 천박한 '수법'이 떠오를까요? "복지도 국가 재정 형편을 봐가며 누려야 한다"는 경제부처 장관의 발언처럼 이명박 정부는 복지 정책의 확대는 고사하고 현재의 복지정책 조차도 과분하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이명박 정부의 주장에 일부 보수적 국민조차 무상 급식 등으로 인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며 난동에 가까운 포악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이 같은 무책임한 동조행위가 차후 이 추운 겨울에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나서는 여러분들을 비롯한 이 땅의 65세 이상 가난한 어른들의 주머니를 더욱 빈약하게 만들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조차 위협받는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이땅의 과잉 복지 운운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바람처럼 무산되다면 그 다음 피해자는 바로 대한민국 어버이 연합 소속 회원을 비롯한 지극히 가난하고 평범한 여러분들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펌에서 한달에 1억 원씩 월급을 받으면서 "나는 법을 어긴적이 없다"고 억울해 하는 이는 절대 모르는 서민의 애환을, 왜 같은 서민들끼리 더 극렬하게 반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또 정작 "내 손자에게는 무상으로 밥 주지 말라"고 말한 적도 없는 재벌들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언급하며 "그렇게 있는 자에게까지 무상으로 밥을 주는 것은 낭비"라는 논리를 되풀이하는 저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만 듭니다. 논리가 그것밖에 없습니까?
필요하다면 나는 세금을 더 내겠습니다
올해 고3이 되는 큰 아이를 따라 10년간 학교 운영위원을 했습니다. 초·중·고교에서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이야기를 한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서 지금까지 학교 운영위원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처음 학교 운영위원회에 올라온 비공식 안건을 보고 놀랐습니다. 미납된 급식비 문제였습니다. 적게는 수백 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 만 원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영문을 모른 저는 이 안건을 제기한 학교 측에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불거지기 전 학교가 더 적극적으로 납부를 독촉했어야지 이런 문제를 왜 운영위 회의에 제출하냐며 버럭 화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막에는 제가 몰랐던 사정이 있었습니다. 학생들 중 정말 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가 아닌 조부, 조모와 살면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몇 만 원의 급식비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제야 그 사실을 제대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의 역할 중 중요한 하나가 이 미납된 급식비를 어디에선가 능력껏 후원받아 오는 일이었습니다.
지역내 라이온스나 로타리 같은 봉사단체를 비롯한 여러곳에 도움을 호소하여 일시적인 후원금을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이러지 말고 정말 아이들의 급식은 나라에서 차별없이 주면 안될까? 적어도 나라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밥만큼은 누구나 평등하게 좀 책임져 주면 안될까, 말입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저는 그만큼의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습니다. 제 아이가 굶주리는 것을 보지 못하듯 우리의 아이가 굶주리는 모습을 저는 보지 못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학교에서 비공식적으로 급식비를 미납한 학생들의 명단을 회의 자료로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이의 이름과 반, 그리고 그 학생이 현재 급식비를 못 내는지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이혼, 또는 사망이나 아버지의 교도소 수감 등이 적혀 있었는데, 참 황당했습니다. 학교측은 별 생각없이 이해를 구한다며 자료를 제공했겠지만 저는 학교 측에 즉각 회수하여 전부 파쇄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뭇 아이들에게 차별없는 행복을 줘야
"아이들을 선별적으로 정해서 순차적으로 제공하는 게 맞다"는 분들의 의견은 그래서 틀린 것입니다.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 '차별 아닌 차별'이 아이들에게 남길 상처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누리는 혜택이기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지하철 경로표를 달라는 것임을 잘 아시는 분들이 왜 이렇게 아이들에게만 야박하게 대하려고 합니까?
복지 정책을 늘리면 나라 재정이 거덜난다는 사람들은 스스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주장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강남에 40평 이상 아파트 한 채쯤 있고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를 타시는 분이 아니라면, 전면무상급식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국민으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더욱 확대·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당신이 던진 그 부메랑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임을 말입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월입니다. 무상급식 반대를 위해 피켓을 들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그 열정의 어르신에게 저는 거꾸로 '복지 정책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정부종합청사나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시길 권합니다. 그렇게 진짜 이 나라의 어버이로 돌아오셔서, 뭇 아이들 입에 '차별없이 들어가는 그 행복'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 보시면 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것이 바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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