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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치닫는 ‘인류밥상’을 구원하라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11. 1.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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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치닫는 ‘인류밥상’을 구원하라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 비만·항생제·오염 폐해 낳아

AI·유가급등·기상이변 등은 식량재앙 부를 잠재적 범인 

 

[한겨레]

 

▲ 현대식 양계장은 양계장 내부를 바이러스 배양실로 만들고 있다.(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농업부 소속 조류병리학자 빅토리아 보우스)

 

< 석유의 종말 > 로 우리에게 알려진 미국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가 2008년에 출간한 < 식량의 종말 > (The End of Food)에서 인용한 이 말이 구제역의 전례없는 창궐과 또 불거진 조류인플루엔자(AI)를 걱정하는 이들에겐 절실하게 와닿지 않을까. 소 키우는 축사나 양돈장이 양계장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닥다닥 이어붙인 우리 속에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빼곡히 채워진 가축들. 이런 현대의 대형 가축사육시설은 인간에게 어느 시대보다 풍성한 육류를 제공해주었지만, 동시에 인류의 미래 세대를 위협할 병원성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유행뿐만 아니라 O157:7H 등의 대장균이나 살모넬라 같은 식중독균이 번성할 완벽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 기회를 차단하면서 수익만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실패했다. 항생제나 성장 촉진제 과다 투여, 대지와 대기의 심각한 오염, 곡물 수급 왜곡, 음식문화 파괴, 처참한 집단 살처분 등을 불렀고 비만과 심장병, 당뇨병, 암을 만연시켰다.

 

그 경이로운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구상에는 10억의 굶주린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매년 750만씩 불어나고 있다. 그 한켠에 비만을 걱정하는 과잉영양의 10억이 존재하는 양극화, 불균형. 그리고 한 가지 작물만 특화해서 대규모로 경작하는 집약적인 단작재배와 이를 가능케 한 제초제와 살균·살충제 등 화학물질 대량 살포, 유전자 조작, 장거리 수송, 매년 수백만 에이커에 이른다는 토양 사막화와 토표 유실, 삼림 파괴, 지하수 남용과 고갈. 이런 엄청난 '외부 비용'을 감안하면 저가전략 속에 유지되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은 저비용체제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 다수의 희생 위에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엄청난 고비용체제다. 로버츠는 우리의 밥상 안전을 좌우하는 지금의 이런 산업화한 식품 생산배급 체제를 식품경제, 식품 시스템으로 포괄하면서, 이 시스템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게 명백해졌으니 지체없이 대안을 마련하자고 촉구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소재 로위 국제전략연구소가 상정한 '신빙성 있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아시아 오리 농장에서 중간 수위의 (사람 감염) 조류독감이 발생할 경우 세계적으로 1400만명이 사망하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300만, 중국과 인도에선 총 500만 이상의 인명피해가 난다. 노동자들은 집 바깥에 나가지 않을 것이고 공장은 문을 닫을 것이며, 많은 투자자들이 자본을 빼내 상대적으로 안전한 유럽이나 북미 쪽으로 피난갈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과 인도의 고성장 경제는 주춤거린다. 미국도 안전지대가 못 돼 20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숨질 것이며 모든 서비스 부문이 타격을 입고 특히 식품 부문은 파국적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다중이 모이는 장소를 기피하고 식당은 문을 닫는다. 식품 서비스 매출은 지금의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다. 식료품점 생산·공급망이 마비되고 약탈에 대비한 보안 강화 조처 속에 트럭 운전사와 저장시설 노동자 등 핵심인력들이 출근을 거부하면서 가게는 단 몇 주 만에 텅텅 빈다. 미국 경제가 입게 될 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2%, 가구당 손해액은 300만원 정도.

 

로버츠는 실제로 이런 재앙의 도미노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진원지는 아시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바이러스 자체의 안전성이 과거보다 높아졌고 아시아 국가들의 대비태세가 개선된 점 등을 들며 그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는 낙관론자들에게 경고한다. 조류독감은 실상 현대 식품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무수한 탄환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자면 문제의 핵심은 조류독감이 아니라 현대 식품 시스템이며, 조류독감은 이 시스템 자체가 다른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치명타를 입거나 붕괴해갈 경우 아무리 정부 차원의 대비태세가 돼 있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다른 요인들로 꼽은 것은 유가 급등, 기상 이변, 밀 녹병 같은 새로운 작물 질환, 농경의 젖줄인 주요 대수층(지하수)의 감소 등이다. 이들 탄환 중 하나 또는 여러개가 급소를 찌를 확률은 점점 더 높아가고 있다. 조류독감이 아니더라도 이미 식품경제 시스템은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게 로버츠의 현실인식이다.

 

"우리는 이미 비만해졌고(그리고 굶주리고 있고), 토양의 유기물질이 감소했으며, 지하수면은 고갈 상태고, 화학비료와 살충제 사용량은 갈수록 늘며, 산림과 농장은 사라지고 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이미 그냥 방치해도 불안정한 궤도에 놓인 상태로, 조만간 식품 시스템이나 주요 부문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종착점에 다다를 것이다. …(통합되고 상호의존적인) 시스템 일부가 붕괴되면 그 파장은 전체로 향한다."

 

'피크 오일'을 지나 석유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할 경우 20년 안에 세계인구가 수십억이나 줄어들 것으로 관측한 시나리오도 있다. 연료와 비료·살충제 등 화학제품 재료로 현 식품 시스템을 떠받치는 근간인 석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 여파로 농작물 수확이 줄고 식품가격이 폭등하면서 식량전쟁 얘기까지 나도는 가운데 창궐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라니!

 

독점적·수탈적 이윤 극대화 쪽으로 진화해온 현 자본주의 경제, 그중에서도 다른 상품처럼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로 산업화한 식품 시스템. 한때 대안으로 떠올랐던 유기농조차 자신의 틀 안에 흡수해버린 식품경제의 피할 수 없는 파산. 식품 산업화의 최대 수혜자는 몬샌토 같은 다국적 종자·농약회사, 곡물거래업체 카길, 식품 가공업체 네슬레와 크래프트, 소매업체 맥도널드, 유통업체 월마트 등 거대 독과점 업체들, 그리고 그들이 적을 두고 있는 부국들이다.

 

< 식품의 종말 > 은 진부할 수도 있는 이런 문제를 풍부한 자료와 현장 취재를 통해 새롭게, 통합적으로 풀어간다. "나는 이 책에서 식품에 대한 일반적이고 때로는 친숙한 이야기들을 식품경제라는 포괄적인 탐구과정으로 확장하여, 비만, 식중독균 만연, 지속되는 기아, 수출 중심 농장으로 바뀌는 제3세계 황무지 등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얼핏 별개로 보이는 문제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현대 식품 시스템을 등장시킨 경제 메커니즘이 이 문제들을 계속 자극하는 현실을 독자에게 알리고 싶었다."

 

 

"거대기업에 뺏긴 식품통제권 되찾아야"
육류소비 줄인 청색혁명 주장
'쿠바 탈산업화 모델' 대안 내놔

 

폴 로버츠는 붕괴위기에 처한 식품 시스템의 지속가능한 대안적 사례로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립상태에 빠졌던 쿠바의 재건 노력을 꼽는다. 쿠바가 새롭게 시도한 식품모델의 핵심은 탈산업화. 쿠바는 기계화와 화학물질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식품 소비에 초점을 맞췄다. 국가운영 농장을 협동조합 형태로 나누고 도시 및 공장에서 농장으로 흘러들어온 수십만 노동인력을 '재할당'했다. 그리고 아바나 등 도시의 대형 집단농장에서부터 작은 뒷마당까지 작물을 심고 잉여수확물을 수백 군데의 새로운 농업시장에 팔 수 있도록 했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대체하기 위해 다양하고 통합적인 생태농업방식을 채택하고 가축과 작물 혼합운영, 윤작, 사이심기, 해충 통합관리기술 등을 활용했다. 그 결과 쿠바는 육류와 유제품이 좀 부족하긴 하나 일인당 식품 섭취량을 완전히 회복했으며, 영양소와 식품 안정 면에서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지은이가 거의 유일하다고 얘기한 쿠바의 이런 성공 사례는 1년 내내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온난하고 습한 기후, 잉여노동력을 필요한 곳에 재할당할 수 있는 정치체제 등의 덕이라 보는 시선도 있다.

 

로버츠가 이와 함께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제시한 대안적 조처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국제적·국가적 차원의 식품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식품을 더욱 활용하는 방향으로 식품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식품 시스템을 대부분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공급망으로 대체해버림으로써 지역사회가 도시민이 소비하는 식품의 5%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미국에서도 뒷마당이나 옥상 정원, 식당 텃밭, 그린벨트내 지역농장, 산업지대 재개간 터 등에서 과일, 채소, 꿀, 가축, 양식용 고기를 생산하는 초보단계의 새로운 도시형 농업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생물·생태학적으로 제약이 있는 종래의 육상 가축 대신 미개척 영역인 바다에서 필요 단백질의 대부분을 얻는 '청색혁명'을 시도하라. 어류는 육지 동물보다 훨씬 적은 칼로리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칼로리를 무게를 불리는 데 쓸 수 있어 식품화에 유리하다. 동일한 양의 사료 투입으로 가축 사육보다 바다 양식업에서 단백질을 세 배나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육류 수요를 줄이는 일이다. 지금의 육류 소비 추세를 뒤엎고 세계의 일인당 평균 육류소비량을 낮추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이대로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미래의 육류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

 

타성에 젖은 현대 육류경제의 모습은 사실 이보다 더 큰 식품 경제를 위태로운 궤도에 집어넣은 거대한 힘의 변형일 뿐이다. 육류의 경우 그 추동력은 대형 주체들의 정치적 영향력 혹은 불만을 품은 소비자들의 무관심이었다. 이를 바꿔야 한다. 개별 노동자 수백만명이 참여해 수백 가지 작물과 가축을 셀 수 없이 많은 전략과 사고를 토대로 생산하는 농업경제는 탄탄한 기술과 모델로 중무장한 대형농가 시스템보다 상품생산이라는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대신 탄력있고 유연하며 적응력이 뛰어나다. 이를 위해 몇년이 걸리더라도 농업정책 개혁을 의회에 촉구하고, 지역활동 단체에 동참하며,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점심 식단운영방침을 개선하고 정크푸드를 내다버리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식품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고된 과거로 다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라 음식과 그 조리를 다른 손에 넘겨주는 건 식품의 종말을 자초하는 것이며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이래도 '통큰 치킨' 먹을텐가? 
[대규모 전염병의 역습과 신자유주의②] 거대한 공장식 축산업과 전염병의 경제학 

오마이뉴스

 

새해 벽두를 장식하고 있는 뉴스는 한파, 물가폭등, 그리고 구제역으로 인한 소돼지의 살처분 광경과 고병원성 조류독감, 신종플루의 재유행이다. 이러한 이슈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관련이 없어보이나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연재에서는 구제역,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 현재의 대규모 전염병 사태의 역사적 맥락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잔인한 경제논리, 그리고 이것이 실제 서민대중들에게 어떤 문제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 기자말

 

▲ 지난 17일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백신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구제역 청정지역 가운데 한 곳이던 함양군은 3만400마리분(여분포함)의 백신을 정부로부터 공급받아 수의사와 공무원, 축협 등 50여 명 14개의 접종반을 편성해 백신접종에 들어갔다.

전 세계 육류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 육류로 바뀌고 있고, 특히 그 추세는 선진국 중심에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BRICs(브릭스)의 경제성장으로 이 지역 먹을거리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인 식량가격 인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애그플레이션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유제품을 포함한 육류소비량이다. 전 세계적으로 13억 명이 축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지구 농업생산량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총 육류소비가 95년에 25.45kg에서 2008년 35.6kg으로 증가하는 동안 곡물소비량은 97년 102.4kg에서 2009년 74kg으로 줄었다. 이러한 육류소비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1980년 이후 본격화된 공장식 축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점

 

공장식 축산업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동일한 조건 하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하여 밀집 사육 환경을 선택한다. 또한 공장식 축산은 높은 생산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동물의 자연적인 습성은 무시된다. 성장 환경의 부적합성, 신체 훼손, 질병 등으로 질병의 발생 가능성과 확산 속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사육되는 가축들은 자연스레 많은 양의 항생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산업은 무게가 많이 나가고 번식력이 좋은 종을 유전자조작을 통해 만들어낸다. 이 역시 이윤추구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유전자 조작은 유전적 다양성을 낮추어 질병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장식 축산업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은 밀집된 사육환경을 통해 최소한의 공간과 최소한의 활동범위만이 허용되는데, 빠른 시간 내에 성장시키기 위해 성장호르몬이 포함된 사료를 먹이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낮은 농도의 항생제를 항시 투여하고 있다. 사료는 경제성의 논리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모이며 이 과정에서 변질을 막기 위해 막대한 화학물질이 첨가된다.

 

지금까지 간단히 짚어본 이러한 공장식 축산업의 공정은 전염병 발생의 핵심적인 배경이 된다. 물론 대규모 축산업은 20세기 초반에도 존재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이런 생산방식이 더욱 거대화되고 기존의 소농장 생산방식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런 추세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이미 상위 몇 개의 공장형 농장이 세계 대부분의 육류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90년대 후반 농축산업 개방으로 심각한 축소를 경험했던 축산농가는 국내 축산업 진흥정책과 국산 육류소비 경향에 힘입어 개방 이전의 규모를 회복했다. 더 큰 변화는 기업식 대규모 축산의 증가로 '07년 축산 농가수(소규모 포함)는 17만4197호로 '99년(48만3785호) 대비 64.0%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사육두수는 반대로 18.9%가량 증가한 것으로 보아 축산농가가 점차 대규모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대규모 사육 환경에서 동물들은 병에 더 취약해지고, 전염병은 빠르게 전파돼 더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 축으로는 세계화로 인한 무역량의 증가가 있다. 조류독감이 유행할 당시 생산시스템과 무역을 제한해야 한다는 압력을 피하기 위해 억울하게도 희생자로 지목된 것은 야생조류이다. 하지만 역학조사결과는 현재 유행하는 조류독감은 밀집형 공장에서 바이러스 변이를 일으키고 무역을 통해 세계로 전파되어 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물론 전파과정에 철새들도 일정한 기여를 했으나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발생지는 밀집형 공장이며 전파경로는 철새들로 한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다양한 전파경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히려 세계무역이다.

 

세계무역은 1950년대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2007년 무역량은 1950년의 약 29배를 넘고 6.1%로 같은 기간 GDP 연평균 증가율인 3.7%를 약 1.6배 앞서고 있다. 먹을거리 시장은 생산물을 대부분 국내에서 기초소비되고 이후에 수출되어야 한다는 특성상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작으나 3.7%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역시 특히 생물종의 교역 증가는 매우 커서 2000~2005년까지 무역량을 보면 조류는 670만 마리, 양서류·파충류는 810만 마리가 교역됐으며, 식물은 7억2천만 개로 가장 많이 수출입 됐다.


▲ 세계 상품교역과 GDP 출처 : WTO(2008) ⓒ 새사연  세계상품교역

 

생물다양성이 위협받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 외래종유입, 오염, 과도한 포획 등이 지적된다. 특히 동식물의 국제무역은 더욱 심각한 생태계 변화를 초래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새로운 개체군이 만나면 상호 경쟁, 공생, 기생 등을 통해 적정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적응기간은 상대적으로 길다. 하지만 현대의 교역은 매우 빠르게,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어 생태계 간에 균형을 이룰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 결과 새로운 개체군들의 만남을 통한 생태계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대규모 전염병 발생의 기초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통큰 치킨과 구제역의 경제학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전염병의 유행의 메커니즘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성장을 통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의 증가 및 값싼 농산물 가격의 유지→사료용 곡물 재배 증가 및 곡물시장 불안정 확대→공장식 축산업 확대→취약한 사육환경과 집단화로 인한 바이러스 변이→전염병 발생→사료와 곡물, 축산물 유통의 증가→전염병의 대규모 유행

 

이러한 대규모 전염병 발생의 기저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먹을거리 산업의 다국적기업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업 발전의 배경에는 식품가격의 하락과 신자유주의 발전, 공장식 축산업의 배경이 되는 경제학이 있다. 신자유주의가 번영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배경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저렴한 기초재 상품의 출현이 있었다. 80년대부터 먹을거리의 소비자 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 주요 곡물 실질가격의 변화 출처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농업개발 장기전략 및 실행계획, 2008  ⓒ 새사연  곡물가격

 

싼 소비재의 전 세계적 유통, 그에 기반한 고용 불안정 및 값싼 노동력의 지속적 공급, 제3세계 지역경제 파탄과 값싼 노동력의 도시유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중심에 거대 농축산업과 값싼 먹을거리가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인 과잉생산을 통해 실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금융을 중심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싼 농산품과 공산품의 지속적인 유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공급된 값싼 소비재는 저임금의 토대가 되고 금융산업의 거품과 더불어 실질임금의 저하에도 신자유주의 시대의 번영이라는 환상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 '5천 원 치킨' 판매가 시작된 9일 오전 11시 L마트 영등포점에 예약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 5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통큰 치킨의 판매로 모 대형할인매장업체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서민들도 싼 통닭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상대적으로 고가(?)의 통닭을 파는 동네 치킨점들은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는 어떤 사회경제학이 숨어 있을까?

 

그동안 쌀을 포함한 기본 먹을거리의 가격은 여타의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의 오르지 않은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다. 신자유주의는 저가의 농축산물을 기반으로 한 저임금구조를 한 축으로 하고, 여기서 이탈된 지역민들이 저임금 노동자군을 형성하는 것을 또 다른 한 축으로 발전해 왔다. 그 배경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곡물-축산-원자재-가공-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식품회사들이 있다. 이들이 값싸게 공급한 저질의 풍족한 먹을거리는 신자유주의 풍요의 결과물로 여겨져 왔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먹을거리의 대량생산체계와 거대 식품산업이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파괴가 발생했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했고 세계 정상들은 현재의 소비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공식적 결론을 내렸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야기되는 새로운 전염병은 부차적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저가의 식품가격마저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애그플레이션을 비롯한 물가상승의 배경에도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미 원자재 가격과 곡물가격의 인상은 매우 가파르며 세계 경제 성장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 국제 곡물가격의 장기전망 출처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농업개발 장기전략 및 실행계획, 2008  ⓒ 새사연  국제곡물가격

값싼 치킨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닭을 공급해야 하는 생산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한다. 통큰치킨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들을 몇 개 나열해보자.

 

가장 먼저는 저가의 병아리 공급, 대규모 사육환경, 값싼 사료, 빠른 성장을 위한 항생제 및 화학물질 투여, 농장과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값싼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병아리와 사료, 약과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집단이다. 현재는 이 모두를 케겔, 몬산토 등과 같은 다국적 식품기업이 장악하고 있고 제약회사도 큰 돈을 벌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인 제약회사들은 이미 생산하는 항생제의 40%가 가축에게 사용되고 있고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면 백신과 치료제를 판매하면서 큰 돈을 번다.

 

이외에도 값싼 치킨을 먹기 위해서는 또한 이런 원자재들이 값싸게 이동할 수 있는 운송체계가 필요하다. 옆집에서 기르는 닭을 좀 더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하기보다 수만 킬로를 날라오더라도 생산비가 더 싼 닭을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파괴와 먹을거리 안전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값싼 통닭을 먹기 위해서는 또한 부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저임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들은 임금이 너무 낮아서 제 값 주고 질 좋은 닭을 먹을 수 없다!

 

간단하게 짚어보았지만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공장형 축산업은 지금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대규모 전염병의 진원지다. 그리고 공장형 축산업이 다시 유통재벌들과 합작하여 동네치킨점과 같은 영세자영업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이 와중에서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전 세계는 공장식 축산업이 만들어낸 대규모 전염병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이보다 더한 악순환이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끔찍한 악순환이 누군가들에게는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내는 이윤의 선순환이 되기도 한다. 이 악순환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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