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가 혁명가면 '인민 봉기'! 송혜교가 범죄자면…
데버러 로우드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프레시안 books]
개그우먼 김지선은 최근 넷째 아이를 출산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다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녀가 요즘 홈쇼핑 방송에 나와 팔고 있는 상품은 다름 아닌 '바르면 살이 빠지는 크림'이다. 몸매가 확 드러나는 쫙 달라붙는 핫팬츠와 민소매 티를 입고서 위풍당당하게 클로즈업 되는 그녀의 몸은 놀랍긴 했다. 잘 다듬어진 복근과 탄탄하게 다져진 허벅지, 적당히 살이 잡히지만 매끈해 보이는 데는 전혀 지장 없는 팔뚝까지, 출산한 지 서너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녀는 출산 전의 모습보다 더욱 건강하고 날씬해 보였다.
문제는 셀룰라이트라고 했다. 여자의 체내에 축적된 지방 덩어리가 여자의 바디 라인을 망가뜨리고 있으며, 울퉁불퉁해진 팔뚝과 허벅지, 뱃살을 '보정'하기 위해 그 크림을 바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쇼호스트는 쉴 새 없이 "귀찮은 마사지 없이 바르기만 하면 탱탱하고 탄력 있는 바디!" "바르면 후끈후끈한 이열치열 셀룰라이트 관리"를 강조하며 노벨 의학상 수상자도 울고 갈 멘트를 날려댔고, 김지선은 직접 바르는 시연까지 했다.
여자 연예인을 동원해 미용 용품을 파는 건 아주 흔한 일이라 이 경우가 그리 특별할 건 없다. 그러나 살 빠지는 크림을 팔고 있는 출산한 지 석 달된 다산왕, 그것도 이미 1978년 독일의 피부과 전문의가 여성들 체내에 축적된 지방질은 근본적으로 정상이라고 했던 그 셀룰라이트가 문제라며 잘 다듬어진 복근과 팔뚝을 팔고 있는 다산왕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출산율 최저라는 한국 사회에서 넷째 아이까지 출산한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애를 낳자마자 군살이라고는 개나 줘버린 몸매로 나타나 살 빠지는 크림을 팔고 있는 그녀의 수고스러움을 어찌 해야 하나. 가정과 국가를 위해 애는 낳되, 애를 낳음과 동시에 출산의 그 어떤 흔적도 깡그리 없애 버려야 하는 이 잔인한 시스템! 몸짱 다산의 여왕과, 그녀가 파는 정체불명의 크림에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대박의 판매 행렬에 동참한 구매 여성들이나, 모두 여성에게 부과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응하느라 결코 만족스러움이란 없는 외모 가꾸기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과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출산 전의 몸매를 회복하려는 한 개그우먼의 노력과 그 '노하우'를 배워보겠다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외모 가꾸기에 정성을 들이는 여성들을 허상을 쫒는 이들로 비난하자고 치자면, 그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될 것이다. 여자 연예인들은 출산하고 나면 자기의 몸매를 포착하는데 더욱 집요해진 카메라의 앵글을 피할 수 없고 혹독한 다이어트에 연예 활동의 생명을 건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뉴스 앵커나 정치인 등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여성들이 통과해야 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매우 가혹하다.
선거 때마다 언론은 예쁜 여자 정치인을 '정치 얼짱'이라 치켜세우며 정책이나 지향하는 가치보다 누가 누가 더 예쁜가를 논하기 바쁘다. 이들은 쉽게 타깃이 되는 여성성을 제거한 명예 남성이 되거나 남성 어른들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고분고분한 여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공인이 아니어서 TV에 얼굴 나올 일 없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직장이나 학교, 심지어 가정에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즈음에서 의문이 든다. 100년 전, 혹은 50년 전에 비해 여성들은 스스로의 열띤 노력으로 보다 많은 영역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은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외모 지상주의는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고, '외모는 경쟁력'이라는 외모 지상주의는 잘 가꾸어진 외모가 개인의 돈벌이와 성공에 필수적이라 독려한다.
외모가 사람을 평가하는 명확한 기준이 되고 그 기준에 의해 명확한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는 지금, 왜 그에 대한 문제의식과 저항은 드문 것일까? 여성운동이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다른 불평등과 비교했을 때, 왜 외모에 관한 불공정은 거의 개선되지 못했을까?
◀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데버러 로우드 지음, 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펴냄). ⓒ베가북스
최근 번역된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The Beauty Bias)>(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펴냄)을 통해 데버러 로우드는 외모에 관한 관행들이 우리 삶을 끔찍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그 차별의 정황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외모 차별이 시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 법대 교수인 저자는 외모에 관한 우리의 관점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방대한 양의 미국 법원 판결을 검토하면서 외모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한다.
로우드는 외모에 대한 편견이 사회·문화 전반에 확산되어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여성의 90%는 외모를 자신의 이미지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젊은 여성의 절반 이상은 비만한 몸을 가지느니 차라리 트럭에 깔리는 편이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생물학적 진화론은 건강과 다산의 징표로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화를 강화하고, 과학의 기술과 진보는 '자아의 개선'이라는 기회를 창조하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들라고 부추긴다. 언론과 광고는 마르고 예쁜 여성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전파하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자존심을 팔아먹는다.
로우드가 제시한 방대한 자료들은 외모가 잘 가꾸어진 여자는 취업과 승진 등 직장 생활에서 잘 나갈 확률이 더 높고, 결혼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구가하며 경제력 있는 남편을 만날 가능성도 높아지며, 대인관계가 더욱 원만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일까? 사실이다. 왜 그럴까? 복잡할 것 없다. 사회가 그런 여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굳이 사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간단한 '팩트'를 환기하기만 하면 된다. 상류층 남성일수록 능력 있는 여자보다 외모가 잘 가꾸어진 여자를 선호한다. 잘 나가는 남편 옆에서 최고로 잘 꾸며진 외모로 대중 앞에 서는 '트로피 아내'들을 보라.
또 70%의 사람들은 뚱뚱한 여자들은 자기 통제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믿는다. 비만 여성은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며 자기 삶을 즐길 줄 모르는 구닥다리로 취급받고 이는 자연스럽게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덕분에 "다이어트는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니 "당신은 새로운 인생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광고하는 다이어트 산업은 한국에서만 1조5000억 원,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의 거대 시장으로 발전했다.
외모와 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어떤 신뢰할 만한 연구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여전히 외모가 잘 가꾸어진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 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기업 인사 담당자 중 87%가 채용 시 지원자의 인상을 고려하고, 68%는 지원자의 외모 때문에 감점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지원자의 인상을 고려하고 사진이 부착된 이력서를 요구하는 기업의 태도로 인해 취업 지원자의 85%는 외모가 취업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보고 있다.
외모로 인한 고용 차별을 받았다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은 적극적으로 외모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대신, 성형수술을 하거나 피부 관리를 받고 이미지메이킹 학원에 돈을 쓰면서 '자기 개선'에 힘쓴다. 취업 시 외모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지만, 여성은 훨씬 더 가혹한 외모의 기준을 요구받는 것이 사실이다.
외모가 가장 큰 자원이 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여자들은 뼛속까지 알고 있다. 여자에게 외모는 인격이고 피부는 계급이며, 하얀 치아는 자존감이라는 것을. 골이 패일 정도의 풍만한 가슴은 섹시함의 상징이고 털 한 올 없이 매끈한 다리는 젊음의 상징이며, 셀룰라이트 없는 팔뚝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표식이고, 가지런히 정리된 손톱은 세련되면서도 단아한 여성이라는 이미지이다.
현대 여성은 얼굴만 예뻐서도 안 되고 전체적인 몸매와 신체 구석구석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S라인, V라인, Y라인 등 신체 부위별로 가이드가 제시되고 가장 아름답다는 사이즈를 위해 가슴에 실리콘을 넣고 얼굴 턱뼈를 깎으며 복부의 지방을 흡입해낸다. 몸의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더욱 디테일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조 속눈썹을 붙이는 시술을 한 달에 한번 꼬박꼬박 받고, 도톰한 입술을 위해 보톡스를 맞으며 하얗고 정갈한 손톱을 위해 네일아트 숍을 찾는다. 여자들은 자기 몸을 관통하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만족스럽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느라 뼛골이 쑤신다.
최근 들어서는 '젊음'의 코드가 아름다움의 기준과 확고히 결합하면서 여성들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20대여, 영원하라!" "너는 영원히 젊을 줄 아느냐"고 호통 치는 화장품 광고가 등장할 정도이다. 화장품 광고는 그 시대 여성들이 가장 갈망하는 욕구를 판다. 정확히 표현하면,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특정 욕구를 죽도록 갈망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욕망을 생산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욕망이 바로 '영원한 젊음'이다.
아름다운 여자는 젊음을 유지하는 여자라고, 젊은 피부는 뭇 여성들의 시샘을 받으며 모든 남성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권력이 된다고 말한다. 도대체가, 나이 들수록 몸도 늙어가는 자연의 섭리가 여자의 삶에는 관철되지 않는다. 여자의 나이 듦이 여성성의 상실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여자들이 계속 '여자'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흐르는 세월과 싸워야 하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가담해야 한다. 여성들은 늙음에 대한 어떤 보호막도 없는 사회에서 생존하는 법을 나름대로 체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미디어와 광고, 과학과 테크놀로지, 미용 산업의 이해관계와 뿌리 깊은 문화적 관행으로 인해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고, 모든 편견이 그렇듯 이는 고스란히 차별로 이어진다. 로우드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12~15%는 외모로 인한 차별 대우를 경험했다고 대답했으며, 이런 비율은 남녀 차별(12~19%)이나 인종 차별(12%), 연령 차별(9~14%) 등 다른 형태의 차별을 경험했다는 사람들과 맞먹는 수치다.
외모 차별은 주로 회사의 이미지가 직원의 '잘 가꾸어지지 않은' 외모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업주의 우려와 편견을 반영한다. 몸무게 109㎏의 에어로빅 강사 제니퍼 포트닉은 피트니스 회사로부터 프랜차이즈를 거부당했고, 간호학교에 다니던 새런 러슬이라는 학생은 비만으로 퇴학을 당했다. 보르가타 호텔의 칵테일바에서는 '보르가타 아가씨'라 불리는 웨이트리스들에게 체중의 상한선을 두고 정기적으로 몸무게를 체크하라고 요구한다. 이때의 관건은 과연 개인의 몸무게가 그에게 할당된 업무를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요건인가 하는 점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2010년 한국에서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프리챌이 전략기획실 직원을 채용하면서 '경력직 승무원 모집' 채용 공고를 내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프리챌은 지원 가능 자격으로 '승무원과 미인 대회 출전자, 모델, 탤런트, 아나운서 경력' 등을 포함했다. 마케팅과 대외 협력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다분히 외모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음직한 사람을 채용한다는 공고에 많은 누리꾼이 분노했다. 이는 '남녀 고용 평등과 일 · 가정 양립 지원 법'에도 어긋나는 행태였지만 프리챌은 채용을 강행했다. "(미인대회 출전자나 모델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회가 키운 인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홍보와 대외 협력을 잘 수행할 것이라 여긴다."는 회사 방침을 '역발상'이라 선전까지 했다. 회사측은 애초 업무와 외모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고, 외모가 잘 가꾸어진 여성이 일도 잘 할 것이라는 확고한 편견에 편승하면서 차별의 기수를 자처했다.
로우드는 이런 외모 차별을 적극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외모 차별이 평등한 기회와 개인의 존엄이라는 원칙을 거스르며, 그러한 편견은 인종과 민족, 계급, 연령, 성 등 다른 불평등을 더욱 고집스럽게 만들고, 더 나아가 자기표현의 권리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앵글로-색슨 중심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에서 좀 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아름다움의 이상을 고취시켜야 하며, 외모로 인해 차별 대우를 하거나 낙인을 찍는 일을 줄이고, 그저 겉모습이 아니라 건강을 강조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북돋우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 법은 외모 차별 금지를 확대하고 사이비 과학을 동원해 여성을 현혹시키는 관련 산업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사회가 여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건강하고도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갖기 위해, 그녀의 전략은 매우 절실하다.
로우드의 제안에 덧붙여, 여성 개인의 차원에서 일으키는 변화는 외모에 대한 관행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요건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많은 자원을 포기해야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 미용용품 회사들이 여성 스스로의 자주적인 결정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메시지를 마케팅에 끌어들이면서, 여성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외모가꾸기에 몰입한다는 '착시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끝없이 여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아름다움의 욕망이 과연 충족될 수나 있을까? 다리털을 깎고 가슴 성형을 하는 것이 과연 '자기 몸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여자의 권리'를 표현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진실로 '해방된 여성의 독립적인 선택'으로서 여성들을 자존감 있는 삶으로 이끌 수 있는가?
여성을 오로지 몸과 외모로 판단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적 언술과, 그 사회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여성 개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사이에는 여전히 큰 괴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로우드가 지적하고 있듯이 "수많은 페미니스트들 또한 개인적인 이해와 정치적인 공약 사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불편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 딜레마를 자기 삶에서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몫이다. 외모 가꾸기에 대한 여성의 행위를 오로지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으로 치부하는 지금의 시선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모를 가꿀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여성 개인이라 하더라도, 그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도 옳지 않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 안의 권력을 성찰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보다 다양한 관점을 만들자는 것이지, 특정한 아름다움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비난하거나 내몰자는 것은 아니다. 여성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외모 차별을 감행하는 기업을 고발하고 불매 운동을 벌이며,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다이어트 식품과 성형수술에 대한 위험성을 공유하는 전략이 훨씬 믿음직스럽다. 공중파에 생중계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여자들을 줄 세우는 미인 대회 현장에 모여 애지중지하는 보정 속옷을 태워버리는 브라버너(braburner)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로우드의 지적대로 개인이 이 세상을 향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방식은 그의 핵심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을 암시한다. 나의 외모는, 내가 어떤 가치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자를 외모와 몸으로 환원시키는 사회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날마다의 외모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아무런 탈출구 없이 외모 지상주의에 포박되어 있는지, 아니면 사이즈나 몸무게 따위와는 상관없이 꿋꿋하게 건강을 추구하고 있는지, 우리의 외모는 매순간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편견과 도전과 저항이 버무려져 있는 내 몸이 전쟁터이듯, 내 외모도 전쟁터이다. 개인이 시작한 싸움은 아니지만 개인을 모조리 동참시키고 있는 이 싸움에, 과연 나는 어떤 전략으로 승부할 것인가. /정박미경 <온라인 이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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