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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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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1. 3. 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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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최고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잠들다


 

할리우드 영화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이 시대 최고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Rosemond Taylor)가 23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세다스 시나이 메디컬 센터에서 네 자녀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을 달리했다. 향년 79세. 사인은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엘리자베스의 테일러의 공식 대변인인 샐리 모리슨이 밝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32년 2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1939년 유럽에 닥친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을 피해 7살의 나이에 어머니와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한 그는 이웃의 소개로 우연히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스크린 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942년 '언제나 누군가는 태어난다 There's one Born Every Minute'로 영화배우에 데뷔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MGM 스튜디오의 '래시 집에 오다'(1943)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극 중 깜찍하고 청순한 이미지와 안정된 연기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당시 최고 여자 아역 배우이던 셜리 템플('키다리아저씨' '파랑새')을 밀어내고 미국을 대표하는 여자 아역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녹원의 천사' '래시의 용기' '작은 아씨들' '신부의 아버지' 등 계속된 히트작으로 테일러의 인기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한 작품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1951)다.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이던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함께 공연한 '젊은이의 양지'에서 그는 타고난 미모와 재력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팜므 파탈' 안젤라 비커스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최고의 배우로 전세계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쿠오 바디스' '클레오파트라' 등의 시대물에서부터 '내가 마지막 본 파리' '레인트리 카운티' 등의 로맨스 드라마, 제임스 딘과 함께 공연한 서사물 '자이언트',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영화화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지난 여름 갑자기'에까지 모든 장르의 영화를 섭렵하며 할리우드 아니 세계 최고의 여배우임을 맘껏 과시했다.


전설적인 여배우답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영화제와 시상식의 주요 연기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경험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58년 '레인트리 카운티'로 첫 여우주연상 후보가 된 이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총 다섯 번이나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1961년과 67년 각각 '버터필드 8'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두 번이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또 1993년에는 공로상인 '진 허숄트 박애상'도 수상했다. 첫 아카데미 수상작 '버터필드 8'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전의 청순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내고 고급 콜걸 '글로리아'를 온몸으로 체화해 내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남편이던 리차드 버튼과 함께 출연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는 권태기에 접어든 중년 부부의 위기를 리얼하게 표현해 내며, 전세계 영화 팬들과 평론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이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애쉬 웬즈데이' '파랑새' 등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극장용 영화 출연작 중 마지막은 '고인돌 가족 The Flinstones'(1994)이며, 테일러의 공식적인 유작은 셜리 맥클레인, 데비 레이놀즈, 조안 콜린스 등 세기의 여배우들과 함께 출연한 TV 영화 '디즈 올드 브로즈'(2001)이다.

 

 

리즈 테일러 "그녀는 마네킹 미녀를 거부했다"

헤럴드경제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건 그런게 아니었어요.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것뿐이었어요.”


아름다움은 외로움의 또다른 표현일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세기의 최고 미인으로 꼽힐 정도로 수려한 용모를 갖췄지만, 평생 외로움과 싸우며 사랑을 갈구했다. 항상 화려한 옷과 보석이 손닿을 곳에 있었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여배우로 손꼽힌 그였지만 “성공은 탈취제와 같다. 과거의 모든 향기를 앗아가 버린다”는 쓸쓸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평생을 세기의 미녀로 칭송받은 그였지만, 수려한 외모만 믿는 마네킹이 되는 것을 견제하는 ‘의식있는’ 여배우였다. 테일러는 “당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웨이트리스가 될 뿐이죠. 당신은 절대로 존경받지 못할 거에요”라며 배우들에게 일갈하기도 했다.


숱한 남자들과의 스캔들, 그것도 가정이 있는 남자들과의 스캔들로 궁지에 몰릴 때에는 당당하게 비난의 시선과 맞섰다. “나는 많은 남편과 보석을 얻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삶은 그저 발생했다”며 초연한 대응을 했고, “당신이 스캔들에 휘말릴 때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죽기 1년 전까지 숱한 염문을 뿌렸던 그녀는 ‘불꽃같은 사랑’으로 유명했고 유독 사랑에 대한 말을 많이 남겼다.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 끝에 결별할 때에는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가슴시린 말을 남겼다.


말년에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인류애로 승화시키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 ‘자이언트’에서 함께 출연한 동료 록 허드슨이 에이즈(AIDS)에 걸리자 1985년 에이즈 퇴치 운동을 시작했고, 공개석상에서 의도적으로 허드슨의 손을 잡아 에이즈에 대한 인식 전환에 혁명적인 역할을 했다. 1991년엔 에이즈 퇴치 운동 단체를 설립했고, 이런 공로로 1993년 오스카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세기는 먼로를 탐하고 리즈를 사랑했다…전설의 여배우들

 

20세기는 마릴린 먼로의 육체와 성을 탐했고, 오드리 헵번이라는 요정을 동경했으며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함을 신격화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뉴욕타임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타계 기사에 "마릴린 먼로는 '섹스의 여신'(sex goddess)였고 그레이스 켈리는 '얼음 여왕'(ice queen)이었으며 오드리 헵번은 '영원한 장난꾸러기 소녀'(eternal gamine)였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의 화신'이었다"고 했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그들이 있어 행복한 시대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마지막으로 20세기를 수놓았던 여배우들이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참혹한 전쟁과 끊임없는 빈곤ㆍ 기아 등 격변과 절망의 역사 속에서 대중들에게 꿈과 희망, 위안 그리고 숱한 이야깃거리를 주었던 스타들이었다.

 

한결같이 세기의 미녀들이었으며 같은 시대를 살았고, 은막의 여왕들이었지만 그들이 상징하는 꿈과 아름다움은 분명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영화보다 드라마틱했던 삶과 사랑의 여정도 저마다 달랐다. 달랐으므로 그들은 서로를 더욱 빛나게 했다. 대중들은 그들 모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짧은 생을 살다간 마릴린 먼로(1929~1962)는 20세기 여성들의 이상적인 육체를 상징했다. 마릴린 먼로는 사생아나 다름없는 존재로 태어났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일약 스타덤에 올라 화려하지만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비극적으로 끝냈다.

 

그녀가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소녀가 성과 육체를 소모시키며 이룩한 '스타탄생'의 신화를 상징한다면 그레이스 켈리(1929~1982)는 평생을 화려한 왕궁에서 베일에 가려진 채 여왕처럼 살다간 배우였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여배우로서도 최고의 시기를 보낸 뒤 모나코의 왕자와 결혼한 해 은막을 떠났다.

 

오드리 헵번(1929~1993)은 순결한 영혼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레이스 켈리는 최고의 순간, 박수칠 때 떠났지만, 오드리 헵번은 마지막까지 최고의 여배우였으며 떠날 때까지 박수를 받은 스타였다. 오드리 헵번은 한번 결혼에 실패한 뒤 평생을 독신으로 남았고 세계의 빈곤ㆍ기아와 싸우는 활동가로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대중들을 만났다.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는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미의 여신이었으며 그녀가 출연한 작품대로 20세기의 '클레오파트라'이자 '비너스' 였다. 세기의 미모로 얻을 수 있는 모든 환호와 행복을 누렸다.

 

동료배우 리처드 버튼과의 반복된 만남을 포함해 8번 결혼했고 7명의 남편을 뒀다. 그녀는 숨을 거둘때까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고, 인간을 늙고 추하게 만드는 시간과 대결했으며 록 허드슨을 비롯해 자신의 동료와 인간들을 불행하게 만든 에이즈와 싸웠다.


 

 

 

 

 

 

 

 

 

 

 

 

 

 

 

 

 

 

 

Elizabeth Taylor 20th Century Icon Passed away

 

Movie Legends, Elizabeth Taylor

- Images of the beautiful Queen of the Screen. For more Elizabeth Taylor see TWO other video tributes.

 

Elizabeth Taylor - A Place in The Sun /Interview- by RichBassett

Please enjoy this short video retrospective on the making of "A Place in The Sun". Dame Elizabeth Taylor tells a rare tale of how she and Montgomery Clift met and how their extraordinary friendship, born out of mutual love and respect, developed. If these video shorts are pleasing to you, please remember to donate to the cause that Dame Elizabeth Taylor holds dear to her heart. The eradication of AIDS in our lifetime. In her lifetime, and may she live to be 100! By Richard Bassett, *2008

 

The Elizabeth Taylor AIDS Foundation

c/o Derrick Lee

Reback Lee & Company, Inc.

12400 Wilshire Blvd #1275

LA, Ca. 90025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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