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첫 출석 수업(3/22~23)
근 30여년만에 학교수업이라는 것을 받았다. 그것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9시간씩 이틀을 했다.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고교시절을 떠올린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당시로선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고교시절을 공부외에 별다른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방송대 출석수업 이틀동안 매우 즐거웠다. 학교에 일찍 가던 버릇이 살아났다. 고교 때도 내가 교실에 도착하면 먼저 등교한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실 먼저 가려고 해서 간 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가는 딸애를 데려다주기 위해 딸의 시간에 맞추다보니 조금 일찍 가게 된 것이다.
수업을 기다리는데 누가 나를 불렀다. 여기서 나를 부를 사람이 없는데 깜짝 놀랐다. 돌아보니 제주일보 편집부국장인 고동수다. 학교는 한 해 늦게 다녔지만 동갑내기인데다 기자시절에 출입처를 함께 하면서 외국 취재도 함께 다녀 가끔 연락하는 사이다. 교육학과에 들어왔다고 했다.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만나 무지 반가웠다. 늦은 나이에 함께 수업받을 친구가 있다는 것도 즐겁다.
첫날 첫수업은 글쓰기였다. 교수는 전에 제민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김순자 교수다. 지금은 제주대에 몸담고 있다. 교수 명단을 보고 긴가민가 했는데 수업에 들어오는 얼굴을 보고 확인했다. 나보다 기자생활을 늦게 시작하고 문화부만 담당해서 별로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연히 몇번 마주친 적이 있어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런데 신문사 생활을 접고 제주대 무슨 연구소에 들어갔다더니 기어이 교수가 됐다. 먼저 아는 척 하기가 좀 멋쩍어서 나중에 수업이 모두 끝난 뒤 인사하려 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먼저 인사를 해왔다. 출석부를 체크하다가 이름을 확인했다고 한다. 기자 선후배가 학생과 교수로 만났지만 이런 만남 또한 즐거움의 연속이다.
다음은 생활한문이다. 담당교수는 인터넷 강의로 접한 바 있는 본교의 손종흠 교수다. 선배들로부터 "손 교수의 강의는 무척 재미있다"고 들은 바 있다. 아닌게 아니라 수업을 무척 재미있게 진행했다. 점심식사를 한 뒤여서 졸릴 법도 한데 조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넘어왔던 용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 유사 용어간 차이 등에 대해 확연히 구분을 해주려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사실은 지난 대학생활때 그리 했어야 했는데 고시공부한다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넘어갔었다. 이제 다시 기본부터 새출발하자는 생각에 1학년부터 시작한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이다. 제주대학교의 이성준교수다.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고교에서 국어과목을 가르키다가 대학원 과정을 밟고 제주대에 재직하고 있다. 이 교수는 문학의 전달체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수했다. 작가가 화자를 내세워 텍스트를 통해 청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청자는 무슨 성격을 갖고 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등의 내용을 시와 소설을 통해 찾아내고 확인하는 과정을 나름대로 학생들과 문답토론을 통해 보여줬다. 색다르면서도 즐거웠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나 소설을 읽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것 같기도 하다. 겨우 한번 수업에 통달하랴마는 지금까지는 책의 줄거리를 읽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틀간의 출석수업이 끝났다. 즐거움 속에 새로운 경험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국문학과를 갔다면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마 못느꼈을 것 같다. 30여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둘쨋날 마지막 과목이었던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김순자 교수에게 "수고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면서 "꼭 완주하십시오"라고 답한다. 자신도 방송대에 등록했다가 1학기만 다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포기한 적이 있어서 힘들다는 것을 알고 격려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웃으면서 속으로만 '꼭 그러하겠다'고 답했다.
출석수업 둘쨋날 오후부터는 눈이 침침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수업받는 즐거움이 워낙 커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뿌듯했다. 수업말미에 시험이야기를 꺼내자 많은 학생들이 비명소리를 지른다. 나이를 먹든 안먹든 시험본다는 소리에는 비명부터 지르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걱정보다 즐거움이 앞선다. 시험성적이야 아무러면 어떠랴. 하나라도 즐겁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면 성적은 F를 맞아도 그리 문제될 게 없을 것 같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행복했다. 지금 이 즐거움이 4년내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 역시 나에게 달려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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