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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박항서의 베트남 축구에 열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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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18. 12. 1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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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를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에 한국인이 열광하고 있다. 왜? 2002년 히딩크 감독 당시 수석코치를 했던 박항서 감독은 이후 한차례 국대감독을 맡았으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얼마없어 경질됐고, K리그 팀 감독을 맡았으나 이 역시 오래 못가고 결국 실업축구 감독으로 밀려났다. 박항서 감독의 선수시절 경력도 별로 화려하지 않다. 그저 그런 선수였고, 단 한차례 국가대표에 차출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가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면서 베트남 국민들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국내에서조차 그의 성공에 크게 환호하며 높은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베트남 축구경기를 우리나라 공중파가 생중계를 했고, 그 프로의 시청률이 무려 18%(케이블TV 시청률까지 합하면 21%)를 기록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축구중계 시청률 못지 않다. 국내 K리그 결승경기 중계 시청률도 이 정도 나오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왜 대한민국은 박항서의 베트남 축구에 열광할까. 일단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의 성공신화를 보자. 박 감독은 한마디로 베트남 축구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10월 취임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새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 1월 2018년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8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위로 베트남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최고의 동남아시아국가를 가리는 스즈키컵에선 무려 1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8년'은 박 감독은 물론이고, 베트남 축구에 최고의 해가 됐다. 그리하여 '박항서 매직'은 그렇게 베트남 뿐 아니라 대한민국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올초 U-23 챔피온십 준우승 이후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한국 축구의 2002년을 떠올리게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개최국 한국에 기적 같은 대회였다. 2001년 사령탑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본선 첫 승리와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강팀들을 나란히 격파하더니 4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다. 당시 한국은 온통 축구 열기로 물들었다. 국민의 축제였다. 수많은 축구팬들이 응원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히딩크 감독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수석코치를 맡았던 게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그 영광을 재현했다. 그래서 한국에선 그를 베트남 쌀국수와 결합해 '쌀딩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 감독을 응원하는 한국팬들의 심리에는 당시 '히딩크 향수'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박항서에게서 히딩크와의 좋은 기억을 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히딩크 같은 존재가 됐다는 사실에 높은 자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항서 감독은 2002년 - 당시에도 실력을 중시했던 히딩크 감독이 아니었으며 국대 스텝진에 포함될 수 있었을까 - 을 제외하곤 국내 축구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아웃사이더이다. 그러한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성공신화를 이뤄낸 것이다. 이같은 극적인 스토리에 한국팬들이 빠져 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 축구계에선 비주류로 외면당했던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실력으로 일군 성공신화에 환호를 보내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누차 지적돼 온 것이지만 실력보다는 인맥, 학력, 지연 등에 좌우되는 우리나라 축구협회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밖에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 한국과 베트남간 예전의 불미스런 일에 대한 화해나 최근 늘어나는 무역교류 등 우호증진에 큰 영향을 주는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일반 사회·경제분야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논외로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대회는 고사하고 아시아 축구에서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하던 축구 변방이자 최약체팀으로 치부됐던 베트남이 보여주는 반전드라마가 국내팬들의 응원 심리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반전드라마의 배후에는 박항서 감독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경기 내용이 예전과는 달리 크게 달라졌다는 점도 포함된다. 최근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의 축구를 쉽제 접하고 있는 국내 축구팬들의 수준은 K리그조차 재미없어 해 할 정도로 수준 높다. 그래서 베트남 축구가 설령 연전연승을 하더라도 축구내용이 그저 그랬다면 아무리 박항서에 환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렇게 TV중계에 매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이긴 하지만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달라진 모습에 국민들은 감동을 받고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이번 박 감독의 성공스토리에서는 그의 '파파 리더십'에 많이 주목한다. 하지만 그런 리더십이 베트남에 가서 비로소 나타난 건 아닐 것이다. 그같은 리더십은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리더십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그러한 리더십이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성적이 신통치 않으니 그의 리더십이 조명될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선 그러한 '파파리더십'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한국축구의 토양과 베트남 축구의 토양이 다른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아빠같은 감독보단 기술이나 전술전략을 우선하는 감독을 선호하는 것이 한국 축구의 토양이라면 기술이나 전략보다는 부족했던 피지컬을 보충해주고, 모래알 같던 단결력을 하나로 모아 선수단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그리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먼저 필요했던 것이 베트남 축구의 토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박항서 감독이 국내에선 빛을 못봤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런 것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의 파파리더십이 크게 조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2년으로 돌아가보자. 히딩크도 무조건 기술이나 전술전략을 우선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단간 인화를 중시해서 엄격했던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깨뜨렸고, 식사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그동안 국대에선 별로 볼 수 없었던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키워 4강 신화를 일궈냈다. 히딩크의 그런 리더십도 이전의 우리나라 역대감독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리더십으로 크게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물러난 뒤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하면서 그와 같은 리더십을 제대로 배운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런 리더십을 쉽게 흡수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파파리더십은 조직의 수장이라면 항상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조직내 갑질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박항서 감독의 성공신화를 보면서 환호보다는 씁쓸함이 앞서는 것은 소득 3만불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나라에서 실력보다는 혈연, 학연, 지연에 치우치는 문화, 갈수록 심화되는 갑질 문화들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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