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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설날 단상

세상보기---------/마음대로 쓰기

by 자청비 2021. 8. 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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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바람 제10집 수록된 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맞이한 설 연휴가 순식간에 지났다. 한평생을 백구과극에 비유하는데 하물며 4일쯤이야 오죽할까.

지난해 추석 때도 그랬지만 이번 설에도 귀성 이동을 자제하는 바람에 고향집은 더욱 썰렁했다. 더욱이 감염병 3차 유행이 퍼진 말미여서 더욱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5인 이상 모임 금지조치가 계속되고, 위반사항 적발시 벌금 조치를 내린다고 했으니 온 가족이 모여 시끌벅적 하던 설 명절이 어떤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1년에 한 두 번 보는 손자·손녀를 못 보게 된 어르신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성토했을 것이고, 명절 대이동이나 차례상 준비 등에 부담을 가졌던 사람들은 귀성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될 합당한 핑계거리가 생겨 좋아하기도 했을 테다. 아닌 게 아니라 설 연휴동안 귀성객은 없고, 여행객만 가득했다지 않은가.

이렇게 되고 보니 그렇지 않아도 급속히 변해가던 설 풍습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된 것 같다. 이미 언젠가부터 설이나 추석 명절 때면 귀성보다 해외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명절 때면 호텔들이 로비에 차례상을 차려주고 손님을 맞이하는 관행은 오래됐다.

이번 설은 이러한 관행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관습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인터넷정보기술의 발전도 크게 한몫했다. 어르신 세배는 영상통화나 동영상으로 대신했고 세뱃돈은 카카오페이로 대신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홀로그램 영상이 상용화되면 멀리 있어도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세배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불가피한 사정은 더욱 늘어날 것 같기도 하다.

 

설날 아침이면 일찌감치 저절로 눈이 뜨였다. 밤새 눈썹이 희지 않았나 얼른 거울로 달려가 확인했다. 어른들은 설 전날 밤에 자면 밤사이 눈썹이 희게 변한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 새해 첫날을 잠자지 말고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밤 10~11시를 넘기기 힘들었다. 안자려고 버티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면 아침에 얼른 겁부터 나서 거울로 눈썹이 희었는지를 확인했던 것이다.

거울을 보고난 다음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마루 밑에 가지런히 놓아둔 새 신발이 잘 있나 확인하는 것이다. 그 땐 설 전날 밤이면 야광귀신이 집집마다 나타나 신발을 신어보고 딱 맞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신고 가버리는데, 그러면 그 신발주인은 그 해에 매우 재수 없고 불길한 일들만 일어난다는 괴담이 돌았다. 그래서 신발이 잘 있는 것이 확인되면 입가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이불을 정리하고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었다. 코끝에 와 닿는 새 옷의 냄새가 어떤 꽃향기보다 좋았다. 어머니가 며칠 전 시장에 가서 새로 사온 옷이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는 털실을 사다가 어머니가 손수 옷을 짜서 지어주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면 풍속도 바뀌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지금의 현대인들은 쌍둥이조차 세대차를 느낀다고 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태에 적응하기가 바쁘다. IT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빠르게 변해 갈 것이다. 그에 따라 인간들의 풍속도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니 과거의 풍속은 백사장에 써놓은 글자가 파도에 지워지듯 흔적 없이 사라져 갈 것이다. 머지않아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사이버 세상에서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 드리고, 윷놀이를 하거나 고스톱을 대체한 사이버 세상에서 즐기는 게임놀이를 할 것이다.

요즘은 똑똑한 전화기’(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진 요즘 똑똑한 전화기하나면 모두 해결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똑똑한 전화기로 인터넷 쇼핑을 하고, 배가 고프면 똑똑한 전화기에 깔아놓은 배달앱으로 부르면 된다. 학교 수업을 듣거나 회의가 필요하면 줌(Zoom) 앱으로 하면 되고, 여러 사람들과 동시에 영상통화도 할 수 있다. 손바닥 안에 또 하나의 세상이 열려 있다.

앞으로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화해갈 것이다. 세계의 석학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 혹자는 이미 그것은 시작됐다고 했다. 4차 산업 혁명은 정보통신 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진다. 18세기 초 철강을 중심으로 한 1차 산업 혁명, 20세기 전후 석유와 전기·전력을 중심으로 하는 2차 산업 혁명, 그리고 20세기 후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넘어가는 3차 산업 혁명에 이어서 4번째 산업혁명이 시작됐거나 앞두고 있다는 말이다. 이 혁명의 핵심은 빅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 양자 프로그래밍, 생명공학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 혁신이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 모든 핵심기술들의 개발이 빨라졌다. 우리 일상에서도 예전에는 꿈같은 소리로만 들었던 재택 수업이 시작됐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재택근무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이 많이 앞당겨졌고 사람을 태우고 이동 가능한 드론이 개발됐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후, 20년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4차 산업 혁명이 완료된 사회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풍습은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떤 계기로 한번 변한 풍습은 쉽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차례 경험한 추석과 설 풍습은 코로나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 해도 이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역사와 전통은 중요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전통은 그 민족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미래 방향을 제시하듯이 전통문화가 형성된 배경을 이해하고 그 토대위에 새로운 전통이 될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는데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랜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 보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자꾸만 옛 전통이나 풍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다. 겉으로는 변해가는 세태를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워지는 마음 속 감정마저 속일 수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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