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3/2) 미세먼지를 뚫고 마흐니오름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올라가다가 아내의 투덜거림에 그냥 내려왔던 곳이다. 혼자 떠났다. 엊저녁에 혼자 간다고 미리 말해 놓았다. 그냥 혼자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마흐니오름 가는 길은 초입부터 심상치 않다. 주차장으로 쓰이던 초입이 넓은 광장으로 변하고 진입로에는 시멘트도로 양 옆으로 도로 확장공사가 이뤄지는 듯 했다. 도로를 확포장하려는 것 같다. 이런 작업이 어디까지 돼 있는가 궁금해서 발길을 재촉했다. 조금더 올라가니 기존 도로에서 크게 갈라지면서 넓은 미포장 도로가 숲사이로 나 있다. 틈만 나면 숲을 밀어내고 도로를 계속 내고 있으니 인간은 스스로 파멸을 재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우울한 마음을 안고 숲으로 향했다. 숲 속에서도 중장비 트랙터의 레일자국이 여기저기 보였다. 숲 속으로 길을 내려는 듯 빨간기와 하얀기가 엇갈리면서 여기저기 꽂혀 있다. 모두 봅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군데군데 나무들이 잘라내져 있거나 잘라낼 나무라는 표식으로 나무에 페인트 칠이 돼 있다. 중간중간 피어난 노란복수초가 마음을 달래줬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 만큼이나 잔뜩 찌푸린 마음으로 삼나무숲길을 지나 마흐니오름자락에 접어들었다.
옛날 이 오름자락에서 소에게 물을 먹였던 쇠물통을 지나 용암유로에 도착했다. 용암이 미끄럼틀 타듯 급하게 흘러내리면서 굳어진 곳이다. 이 오름에 이런 신비한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니. 조금 더 올라가다가 사람의 숱한 발길에 채이지 않고 피어나고 있는 작은 풀잎을 보았다. 사람의 발길에 흙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놓은 가마니 틈새로 어린 식물이 올라와 있다. "네 머리 위로 숱한 발길이 지나갔을터인데 운좋게 용케 버텨내고 있구나."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세거리 내창을 지나 가다보니 나무가 뿌리채 뽑혀 쓰러졌는데도 몇 개의 가지가 다시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었다. 아마 한줄기 뿌리가 땅에 묻혀져 있어 쓰러진 큰 가지야 어쩔 수 없지만 새 가지들은 다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 어려운 일만 생겨도 쉽게 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무는 최악의 악조건에서도 실오라기 같은 한가닥 희망을 붙잡고 강인하게 살아갈 것을 인간에게 주문하는 듯 했다.
마흐니오름 정상을 지나 내려오는 길에 마흐니궤와 수직굴, 용암대지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왜 진작에 여기를 와보지 못했을까. 궤에는 아마도 옛사람들의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름지기 수직굴에도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 듯 했다. 지하 20m 아래에는 또 다른 용암동굴이 이어져 있다고 하니 마흐니오름의 이야기는 끝이 없을 듯 하다. 그리고 마흐니오름에 거처하는 온갖 짐승들이 모여 앉아 회의를 했을법한 원형극장 같은 용암대지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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