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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힘들고지칠때------/영화또보기♣

by 자청비 2021. 4. 1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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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요즘은 블로그에 영화이야기만 연속으로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1년이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 감염병.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져야 할 숙원들이 자꾸 구악들에 의해 발목잡히는 현실, 결국 엊그제 그 결과로 나타난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선 참패 등등. 개인적으로는 병원 이직 10년을 넘기고 나니 이젠 모든 동력이 끊어진 상태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현실에 우울감만 늘어나는 현실. 그러니 무얼 하든 의욕이 앞서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넘기고 있다.

우연히 지난달에 어느 영화소개 TV프로그램에서 자산어보를 보았다. 관심이 갔다. 우리가 흔히 정약용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형인 정약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영중인 영화로 알고 보러가려 했더니 3월말 개봉예정이었다. 그래서 4월 첫째주 휴일에 가려다가 일정이 안맞아 엊그제 6일날 퇴근 후에 보러갔다. 극장엔 우리 부부 포함해 달랑 3쌍. 완전 전세냈다.

 

영화는 흥미 만점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대중적 관심을 끌기까지는 글쎄다. 내 취향에는 맞지만 따지고 드는 영화라서 깊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맞지 않을 듯 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주자학으로 무장했던 시대에 서학(천주교)의 도입은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 시대였다. 실제로 천주교를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당시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런 속에서 정약용의 다량의 저술과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저술됐다.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정약용은 유교의 교리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을 원했고, 정약전은 유교의 교리를 완전히 깨고 벗어나는 개혁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정약전은 끝내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서얼이면서도 주자학에 목메었던 창대가 목민심서를 실천하려 했지만 결국 좌절하고 흑산도로 돌아온다. 그나마 정약용의 개혁도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러고보면 개혁은 현대에만 있는게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개혁과 보수는 있었고, 간혹 개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나브로 변화해 왔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동의 움직임도 있다. 그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역사발전의 법칙일 것이다.  그러기에 개혁의 시도 자체가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개혁과 보수와 반동의 세력은 과연 무엇일까. 

 

정약전(1758~1816)은 어린시절부터 실학자였던 권철신(성호 이익의 제자)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783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1790년 병과로 과거시험에 급제했다. 이후 병조좌랑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정조는 '정약전의 준걸한 풍채가 정약용의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라며 당시 세력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남인계열의 두 형제를 총애하였다.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순황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정순황후의 오라비 김귀주를 중심으로 한 노론의 일부 세력(벽파)이 반대파를 숙청하기위해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신유박해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정약용의 세째 형인 정약종은 사형당했으나 천주교와 거리를 두었던 정약용과 둘째 형인 정약전은 각각 전라도의 신지도라는 섬과 경상도 장기로 1차 유배를 당한다. 그리고 신유박해의 연장선상에서 황사영 백서사건(신유박해의 참상을 전하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외국의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 황사영은 정약전의 이복형 정약현의 사위로 이 사건으로 사형당하고, 그의 부인 정난주는 추자도를 거쳐 제주에 유배돼 생을 마감했다) 이 일어나 두 형제는 다시 각각 전라도 강진과 절해고도였던 흑산도로 유배지가 옮겨졌다. 

 

자산어보는 3권 1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서적이라고 할 정도로 정교하게 쓰여졌다고 한다. 다만 도록이 없으며, 생물 이름을 현장에서 쓰는 한글이름이 아니라 모두 한자이름으로 바꿔 적은 것이 흠이다. 현재 전해지는 책은 모두 필사본이며 정약전이 직접 집필한 원본은 행방이 묘현하다. 그래서 자산어보가 완전히 실전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책명을 ‘자산어보’라고 명명한 데 대하여 정약전은 자서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자(玆)’는 흑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자산은 곧 흑산과 같은 말이나, 흑산이라는 이름은 음침하고 어두워 두려운 데다가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흑산 대신에 자산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에 자산이라는 말을 책제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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