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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은노꼬메 5/9

한라의메아리-----/오늘나의하루

by 자청비 2021. 5. 1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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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게 되면 오전 일찍 챙겨서 나서는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산행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렇지만 아침에 상쾌한 숲속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다섯시쯤 숲길을 다녀본 사람은 그 기분을 알게 된다. 숲의 정기가 모두 내게로 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산행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동아리나 단체와 함께 한다. 그러다보면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더라도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산행을 하다보면 산행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행후 뒷풀이를 즐기기 위해 산행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름 산행이 좋은 것은 아침에 나서면 2~3시간의 짧은 산행후 점심식사하고 오후에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행하다보면 뒷풀이 자리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먼저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뒷풀이가 끝나길 기다리다보면 오후시간이 다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낮가림도 있다보니 산행할 때마다 바뀌는 얼굴도 부담스럽다. 새로운 오름을 찾아가는 흥미도 많이 떨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단체 산행을 기피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운동삼아 홀로 오름 산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1년에 1~2차례 한라산을 혼자 다니곤 했기 때문에 홀로 산행해도 부담도 없다. 그러다보니 '꼭 아침 일찍 오름산행에 나서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몇차례 시험삼아 오후 1~2시쯤 홀로 나가서 오름 산행을 하고 오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오후에도 오름산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 오전 일찍 다닐 때는 오후에는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다만 동호회나 단체팀은 없고 홀로 산행이거나 아니면 중장년의 부부, 간혹 가족단위라는 점이다. 물론 많이 알려지고 길이 잘 만들어진 오름들에서만 그렇다. 길이 험하거나 유명하지 않은 오름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안보이긴 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각설하고 어제는 오전에 방송대 레포트를 하나 마치고 오후 1시쯤 되서 족은노꼬메를 향했다. 여러차례 가봤기 때문에 오늘은 안다녔던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00재활원 길로 접어들었다. 보통은 경찰특공대 훈련장 앞에 세워놓고 가면 수월하다. 1996년부터 오름산행을 시작했는데 그 때 족은노꼬메를 가기위해 이 길로 갔었다. 그 때는 오름들이 지금처럼 길이 잘 나있지 않고 원시상태였기 때문에 길이 매우 험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재활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족은노꼬매 정상까지 걸어갔던 것 같다. 그 이후 이 길은 잊혀졌다. 
혼자 가는 길이라 살짝 불안하긴 했는데 미리 오름블로그에서 그 쪽 길의 지도를 확인하고 쭈욱 올라갔다.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서 경사가 급하다는 것 외엔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올라갔다. 중간에 사거리가 나오길래 그 곳인줄 알고 차를 세우고 확인했다. 그런데 주차장이 있다고 했는데 주차장이 없다. 다행히 인근에서 고사리를 캐고 있던 아낙이 있길래 물어보았더니 조금만 더 올라가라고 한다. 거기서 한 10여분 낭비하고 다시 올라갔다. 널따란 주차장이 나온다. 차에 자전거를 싣고 이곳까지 올라와 이 근처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름안내판을 보았다. 상잣길이 만들어지기 전에 세워진 오름안내판이라서 상잣길은 그려져 있지 않다. 입구에서 하나는 상잣길 방향이고 하나는 고사리밭 길 방향이다. 상잣길로 접어들었다. 오른쪽(북쪽방향)이 대체로 시원한 초지 형태라면 왼쪽은 원시림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상잣성은 중산간에 풀어놓은 마소가 한라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쌓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초지와 원시림의 형태가 이해가 된다. 그렇게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족은노꼬메 정상에 이르는 길과 만나는 곳에 다다랐다. 나는 이 상잣길이 족은노꼬메오름을 두르고 있어 고사리밭까지 이어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직진했다. 길이 험하지도 않고 경사도 별로 없어 기분좋게 산책하듯이 계속 걸었다. 1시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오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낯익은 오름이다. 어! 저게 왜 이쪽에 있지? 분명 노꼬메오름이었다. 상잣길이 노꼬메 오름 입구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러면 이 상짓길은 족은노꼬메와 큰노꼬메를 모두 두르고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노꼬메오름을 올라가는 길도 그냥 지나쳤다. 가다보면 고사리밭까지 이어지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마침 길도 선명해서 별다른 불안감 없이 직진했다. 그렇게 해서 작은 냇가도 건너고 조금도 가다보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숲이 끝나고 너른 초지가 펼쳐졌다. 물론 너른 초지 뒤에는 다른 숲이 있다. 초지위에 사람다녔던 길이 선명히 있어서 살짝 불안하면서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러기를 한참 가다보니 방향감각이 무뎌진다. 초지위에 사람의 흔적도 점점 희미해져간다. 작은노꼬메오름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 길이 고사리밭으로 이어지려면 작은노꼬메가 보여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길은 아닌 듯 싶다. 그러면 노꼬메오름 정상을 오르지 않고는 작은노꼬메로  갈 방법이 없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시계를 보니 3시 5분. 돌아가서 노꼬매오름 정상을 넘어 작은노꼬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발걸음이 급해졌다. 시간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너무 늦어지면 고사리밭길은 내가 상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노꼬메오름입구로 되돌아왔다. 지금까지 느긋하던 발걸음이 급해졌다. 평소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도 노꼬메 정상까지는 한시간 정도면 충분히 갔던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서둘렀다. 올라가기 시작한 지 얼마안 돼 애들 데리고 올라가는 가족단위팀이 몇몇 보였다. 관광객인 듯 했다. 애들이 아직 어려 올라가다가 아마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하며 추월했다. 내려오는 팀은 간간이 보이는데 더 이상 올라가는 팀은 보이지 않았다. 다소 걸음을 빨리 하는데다 버프를 뒤집어 쓰니 호흡이 가빴다. 사람이 안보일 때면 버프를 내리고 빠르게 올라갔다. 
생각이 앞섰다. 만약에 고사리밭에서 날이 어두워져서 내가 길을 못찾아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한병, 비스킷 한조각 넣고 온 터라 비상물품도 하나도 없다. 119를 부르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아니야 119는 바쁘니까 대학에서 산악부 경험도 있고 한동안 오름을 같이 다니던 내 친구에게 전화해서 와달라고 해야 하나. 만약 그 친구가 술먹어서 운전할 형편이 안되면 어떻게 하지. 매제도 꽃사진 찍으러 오름을 많이 다니니까. 매제에게 차를 몰고 와달라고 해야 할까. 등등 고민을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가파른 숲을 벗어나 백록담이 한 눈에 보이는 평지에 다다라서 시계를 슬쩍 봤다. 30분만에 주파했다. 노꼬메 정상부 능선에 바라보는 한라산 백록담 부분과 주변 경관이 단연 일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꼬메오름을 즐겨 찾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더군다나 5월이다. 미세먼지가 있긴 했지만 오후의 햇살에 초록 카펫처럼 펼쳐진 한라산의 풍경은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가롭게 풍경을 즐길 수 없었다. 노꼬메 정상 못미처 족은노꼬메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거기까지 한달음에 내달렸다. 노꼬메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길까 하다가 원래 오늘의 코스가 아니었기에 통과했다. 곧바로 작은노꼬메로 이어지는 길로 꺾어들었다. 내려가는 길은 서두르면 안될 것 같아 걸음을 늦췄다. 서두르다가 굴러 떨어지면 만사 끝장이니까. 드디어 족은노꼬메 삼거리길에 당도했다. 여기에서 이정표를 확인했다. 삼거리에서 고사리밭까지는 0.1km, 고사리밭에서 주차장까지는 볼과 1.6Km 다. 헐~ 내가 너무 긴장했었구나. 
예전에도 여러 차례 봤던 이정표지만 고사리밭쪽으로는 별로 기억에 담아두지 않았던 탓이다. 천천히 고사리밭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어린 두 아들과 엄마가 장난치며 걷고 있다. 잠깐 걸어 나가지 넓은 개활지가 나온다. 여기가 고사리밭이다. 고사리가 별로 보이진 않았다. 길이 임도여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아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간간이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후 4시가 넘은 이 시간에도 올라올 정도로 사람들이 편하게 많이 찾는 곳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잘 모르느 관광객일 수도 있겠지만. 울창한 숲의 원시적 분위기를 느끼면서 편하게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한 여름에 가족들이랑 와서 천천히 걸으면 좋을 듯 싶다. 
천천히 걷다보니 차를 세워 놓아둔 주차장에 도착했다. 바로 차타고 내려가는게 아까워 주변을 좀 더 둘러보았다. 옆에 버려진 듯한 밭으로 들어가보니 작은 웅덩이 같은 곳에 사다리 등이 놓여있다. 아마 짐작컨대 아이들의 체력훈련장으로 만들어놓았던 것 같은데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 모두 망가져 있다. 널따랗게 펼쳐진 개활지에는 예전에 재배했던 듯 군데군데 맥주맥 보리가 나있다. 한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멀리 제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 웬 작은 섬이 보이고 그 뒤로 더 큰 섬이 보인다. 아마 추자도쯤 될 것 같다. 놀랐다. 오늘 미세먼지가 있는 날인데도 추자도까지 보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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