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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전적지 현장을 가다 9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5. 12. 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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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혼바크노도(魂魄의塔)

오키나와 남쪽의 가장 끝부분에 세워진 혼바크노도(魂魄의塔)는 만개노도(萬華之塔)와 같은 납골소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전쟁이 끝나자 주위에 있던 시체와 유골들을 모아 작은 자연동굴 안에 집어 넣어 쌓이자 돌로 둘레를 쌓고 탑을 쌓아올렸다. 이 지역에서 주민들이 수습한 시체와 유골들은 3만5천여구로 알려지고 있다. 이 탑이 처음 낙성된 것은 1946년 2월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주변의 밭과 산야에서 계속해서 유골이 발견됐다. 납골소의 유골이 계속 추가돼 결국 지금의 탑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혼백의 탑은 원형의 돌무더기가 2단으로 겹쳐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魂魄이라고 새긴 산호석이 놓여 있다. 아랫단은 직경 10여m에 높이 50cm정도의 돌담으로 에워싼 뒤, 잔디로 덮었다. 윗단은 다시 아랫단과 비슷한 높이의 돌담에 직경 4m에 시멘트 포장을 하고 가운데 높이 1m정도의 산호석을 세워놓은 형태다. 호사카 교수는 이 비석을 거친 돌로 해놓은 것은 아픔을 느끼라는 뜻으로 해놓았다고 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해마다 6월 23일 ‘위령의 날’이면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오키나와전 전몰자 추도식을 마친 뒤 자신의 가족이나 친인척의 유골이 봉안된 위령탑을 찾아간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이 혼백의 탑이다. 위령의 날에는 혼백의 탑 경사면은 꽃다발과 제물로 뒤덮이며 하루종일 향 냄새와 연기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돌과 시멘트로 허름하게 세워진 ‘혼백의 탑‘ 주변에는 깨끗하고 빛나는 대리석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의 위령탑이 여러 개 늘어서 있다. 北海道를 비롯한 東京, 宮崎 등 일본의 都道府縣의 탑이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 전역에서 모인 병사들이 오키나와 전에 참가해 전사했다는 것이다.
허름하고 초라하게 세워진 ‘혼백의 탑’과 화려하고 웅장하게 세워진 각 지의 위령탑을 보며 오키나와현 주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또 이곳을 둘러보는 관광객이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⑦토도로키호(횡의壕. 횡字는 車字가 위에1 아래2개로 된 문자임)

<토도로키호는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듯한 내리막에 바위틈의 좁은 입구로 내려간다.> 


오키나와 남부 최대의 피난호였던 토도로키호는 종유석 천연동굴로 원래 오키나와 현청이 피신해 있었다. 전쟁이 악화되면서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미군에 쫓긴 일본군이 이곳에 들어오면서 현청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일본군은 주민들을 위협해 식량을 빼앗았다. 식량부족으로 어린 아기부터 시작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주민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면 일본군은 총으로 사살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숨진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곳곳에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은 내려가는 입구가 매우 험했다. 거의 수직굴 형태였다. 동굴 안에 수량이 풍부해 인근 농업용수로 쓰는 듯 호스가 동굴 안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비좁은 통로를 따라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간신히 내려가니 동굴 안은 매우 넓었다. 그러나 내부가 바위나 종유석으로 이어져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좁았다. 때마침 수학여행 왔던 학생들이 동굴 끝까지 갔다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잠시 비켜섰다가 모두 지나간 뒤 이동했다. 곳곳에 약식으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에서 어린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곳곳에 허름한 제단을 지어놓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험한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다 보니 큰 호수가 나왔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이 호수는 마을 중심부로 흘러 강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우리일행은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당초 들어왔던 입구를 지나쳐 계속 가다보니 비교적 평지가 나온다. 왼쪽 옆으로 험한 계곡 사이로 물이 흘러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 평지 쪽엔 군인들이 주둔하고 먼저 갔던 쪽에는 주민들이 대피해 있었다고 했다.

<동굴내에서 비교적 평평한 이 지역에 군인들이 머물렀다.>

 

호사카 교수는 “오키나와 일대에는 이런 천연 종유석 동굴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많지 않은 주민들이 피신해 있다가 죽은 채 방치되고 있는 동굴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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