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전체가 커다란 요새”
프롤로그
한라일보:2005. 10.06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 탐사팀이 지난 1일 남제주군 송악산 일대에 일본이 구축해 놓은 어뢰정 기지를
현장 조사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패전 기운이 감지되던 1945년 2월 9일, 일본방위총사령관은 각 군부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시달한다. 미군과의 본토결전에 대비해 7개 방면의 육·해군 결전작전을 준비하라는 명령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제주도 방어작전인
이른바 ‘결(決) 7호작전’이다. 이어 1945년 4월 15일에는 제주섬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제58군사령부가 새롭게 신설된다.
이 때부터 그 해 8월 종전직전까지 4개월 사이에 무려 7만 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병력이 제주섬에 집결한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일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제주섬 전체를 요새화 하는 것이다. 이에따라 제주섬의 동쪽 끝 성산일출봉을 비롯 서귀포시 삼매봉, 수월봉, 서우봉, 별도봉 등 해안가의 절벽에는 특공기지가 구축됐다. 해안부터 중산간지대는 물론 한라산 어승생악에 이르기까지 주요 거점지역에 각종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한라산 허리에는 각 주요 진지를 연결하는 ‘하치마키’라는 군사도로가 만들어졌다.
일제 군사시설의 종류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위장진지·전진거점진지·주저항진지·복곽진지 등 유형별로 4종류의 진지를 구축 본토결전에 대비했다.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에는 알뜨르비행장이 조성됐으며, 섯알오름에는 거대한 지하참호가 구축됐다. 고사포진지, 해안특공기지, 전투기 격납고, 통신시설, 부대막사 등 제주도는 총체적 군사시설이 집중해 있는 곳이다. 일부에서는 일제 당시 만들어진 이러한 군사시설의 수는 7백여기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그 아픈 역사의 흔적은 광복 60주년을 맞는 오늘날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 섯알오름 일대의 지하참호(기존 진지동굴로 알려진 곳)는 일본 최대의 군사시설인 가나가와현의 해군 제1항공시설이나, 나가노현 마츠시로 대본영보다 1.5배 정도 큰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일본 전쟁유적 전문가인 스카사키 마사유키에 따르면 해군의 군사시설 이외에 일 육군이 파놓은 지하 갱도진지의 총길이는 32km에 이른다. 이것 역시 엄청난 규모다.
일본군의 본토결전을 위해 구축한 시설이 일본 국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것은 자칫 제주도민 전체가 전쟁의 참화에 휩쓸려 희생당할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아래 놓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러한 군사시설은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시점까지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고난의 역사현장인 일제하 전적지는 그대로 방치된 채 훼손·파괴의 위협아래 놓여 있다. 말로는 지일(知日)·극일(克日)을 외치면서도 일본의 침략야욕을 생생히 보여주는 전적지들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군사시설 구축에 강제동원돼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역사의 아픔을 온 몸으로 감내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나 정부에서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는 못했다. 최근에야 정부 차원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 진상조사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비록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광복은 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정도다.
정부는 지난 1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상태다. 일제당시 거대 군사시설은 역설적으로 왜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고,
동북아 평화의 중심지가 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근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송악산·알뜨르비행장 일대를 벨트화 해서 세계유산(복합유산)으로
지정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의 거대한 지하 갱도진지, 송악산 해안의 자살특공대
어뢰정기지와 함께 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사람발자국화석지대, 뛰어난 지질·화산학적 가치를 보여주는 송악산·산방산을 묶을 경우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국의 경우 일제가 세균전과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 유적지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중인 사실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이에따라 일제 전적지의 실태파악이나 구축과정은 물론 도민의 강제동원과 이로인한 피해, 역사교훈의 장으로서 활용방안 모색 등 규명해야 할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는 상태다. 제주도 등 자치단체와 정부차원의 조사·보존방안을 비롯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
[전문가 기고]“일제하 전적지 조사 시급”
일본군이 제주도 전역에 조성해 놓은 군사시설의 실태를 조사하고,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일제 말기 일본군이 제주도에 조성해 놓은 군사 시설은 육군·해군의 비행장, 포대, 참호, 고사포진지, 훈련장 및 감시초소, 대피소, 진지갱도, 특공대기지,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폭탄매립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라산 중턱에 ‘머리띠를 두른 형국’이라는 뜻에서 ‘하치마키[鉢卷]’라는 군사도로가 만들어졌으며, 각 진지와 진지, 진지와 포구를 연결하는 군사도로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것은 일본군이 우리 땅에 남겨 놓은 군사 시설의 가장 중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하며 규모도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일본군 군사 시설의 현황은 물론, 제주도 주둔 일본군의 실태, 군사시설의 구축 과정, 일본군과 제주도민과의 연관성,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 제주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 결전’ 준비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그동안 기초 조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현황 조사에 머물렀고 역사적 접근 방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한편 당시 군사시설의 공사에 강제 동원되었던 주민들에 대한 폭넓은 면접 조사가 실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무관심 때문에 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온 일제 군사시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도 논의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태평양전쟁 말기 한반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결전’의 실상과,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를 분석하고, 일본군 전적지의 현장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당시 강제 동원되었던 제주도민들의 면접 조사를 통해 건설 당시의 상황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전쟁 경험과 인식을 재구성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제주도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필요로 한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와 한라일보사가 공동으로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신문지상에 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도민들의 많은 협력을 바란다.
<조성윤/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일제하 군전적지 조사팀 명단>
▷자문위원 오문필(한라산등산학교장) 조성윤(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사회학) 김동전(제주대 사학과 교수·역사학) 황석규(제주대 사회학과 강사·사회학) 박찬식(제주대 사학과 강사·역사학) 지영임(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인류학) ▷취재자문위원 강문규(본사 논설실장) ▷특별취재팀 윤보석(팀장·사회부장) 이윤형(편집부 차장) 표성준(정치부 기자) 이승철(사진부 기자).<사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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