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방송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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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우리말 우리가> 시간입니다. 몰라서 틀리기도 하고, 또는 습관적으로
잘못 쓰고 있는 우리 말들을 바로 잡아보는 시간인데요. 수원 농촌진흥청 농업공학연구소의 성제훈 박사님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어떤 내용을 또 소개해 주실건가요?
성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다보니 연세 드신분들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가끔 있더군요. 어르신들의 건강을 잘 챙기시라는 의미로 오늘은 부고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부고장에서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말할 때, 홍자 길자 동자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성에는 자를 쓰지 않습니다. 그냥 홍 길자 동자라고 쓰시면 됩니다. 누가
돌아가셨다는 내용 밑에, 장사하여 시체를 묻는 곳을 말하는 ‘장지’가 나오는 데요. 장지에 ‘선영’이라고 쓰신분이 있습니다. 이것도 틀린
표현입니다. ‘선영’은 ‘조상의 무덤’을 말합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분을 먼저 돌아가신 조상의 무덤에 합봉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선영’이라고 쓰시면 안 됩니다. ‘선산’이라고 써야 합니다. 굳이 ‘선영’이라는 단어를 꼭 쓰고 싶다면 조상의 무덤 아래쪽에 묻는다는
의미로 ‘선영하’라고 쓰시면 됩니다. 또 상가에서 남편이 죽고 혼자된 아내를 미망인이라고 하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요. 이 미망인도 절대로 써서는
안 될 말입니다. 미망인(未亡人)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남편을 따라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고 있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단어를, 남편이 죽어 힘들어하는 부인에게 쓰면 안 되죠. 이건 고대 중국에서나 썼던 그런 말입니다. 또,
장지를 설명할 때, 무슨 역 지나서 우측 300M 지점하고 말할 때, 미터도 소문자로 써야지 대문자로 쓰면 안 됩니다. 5KM도 마찬가집니다.
km로 소문자로 써야 합니다. 소문자도 정자로 써야지 필기체로 쓰면 안 됩니다. 단위를 쓰는 규정이 그렇습니다.
정 아! 그랬군요. 너무 쉽게 실수하는 말들인데.. 잘 기억해 둬야겠습니다.
성 혹시 정 박사님 지금 가디건 입고 계시나요? 털로 짠 스웨터의 한 종류를
가디건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이 가디건은, 실은 카디건입니다. ‘카디건’만 표준말로 우리나라 표준 국어사전에 올라있습니다. 이
카디건(cardigan)은 어떤 전쟁에서 그런 옷을 즐겨 입었던 영국 백작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카디건을 입다/카디건을 걸치다."처럼
써야죠.
정 예, 요즘 좀 쌀쌀해서 카디건을 걸칠 때가 종종 있는데 가디건이 아닌, 카디건!
잘 기억하겠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내용 소개해주시죠
성 요즘 가을이 되니까 한약을
다려드시거나, 과일로 배즙을 내 드시는 분이 많더군요. 저도 집에서 애를 봐 주시는 장모님께 배즙을 좀 해 드리려고 시장을 돌아다녔는데요. 어떤
집에 갔더니 배즙을 ‘다려’ 준다고 하더라고요. ‘다리다’와 ‘달이다’는 다릅니다. '달이다'는 "약제 따위에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다."라는 뜻으로, 보약을 달이다/뜰에서 달이는 구수한 한약 냄새...처럼 씁니다. 그러나 '다리다'는, "옷이나 천 따위의
주름이나 구김을 펴고 줄을 세우기 위하여 다리미나 인두로 문지르다."라는 뜻입니다. 다리미로 옷을 다리다/바지를 다려 줄을 세우다 처럼 씁니다.
이렇게 '다리다'와 '달이다'는 뜻이 다릅니다. 당연히 배즙은 다리는 게 아니라 달이는 거죠.
정 네.. 계속해서..
성 며칠전에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는데요. 청소하기 위해 물건을 방안으로 다 꺼내놓으니까 움직일 때마다 걸리적거리더군요. 이렇게 “거추장스럽게 자꾸 여기저기
걸리거나 닿다.”는 뜻으로 ‘걸리적거리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것도 틀렸습니다. ‘거치적거리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걸리적거리다’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정 아! 걸리적거리다...자주 쓰는
말인데, 정작 국어사전엔 없었네요...
성 이번엔 ‘너머’와 ‘넘어’를 소개드릴게요.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살기에’ 라는 노래 가사가 있는데요. 여기서 산 ‘너머’인지 산 ‘넘어’인지 헷갈리시죠? ‘너머’와 ‘넘어’는
발음이 같고 뜻도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습니다. 간단히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넘어’는 ‘넘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입니다.
따라서, ‘국경을 넘어갔다, 산을 넘어 집으로 갔다’에서처럼 동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너머’는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은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을 의미하는 명사로서 공간적인 위치를 나타냅니다. ‘고개 너머, 산 너머’처럼 쓰이죠. 다시 말씀드리면,
‘넘어’는 동작을 나타내고, ‘너머’는 공간이나 공간의 위치를 나타냅니다.
정 성박사님의 똑
부러지는 설명에 이젠 ‘넘어’와 ‘너머’의 차이를 정확히 알겠습니다. 다음 또 소개해 주실 내용은요?
성 며칠 전에 저희 집 아들 돌이었습니다. 돌을 쓸 때, 돐이 맞을까요. 돌이
맞을까요? 몇 년 전에는 ‘돌’과 ‘돐’을 구별했습니다. 그러나 새 표준어 규정에서는 ‘돌’ 하나만 쓰도록 했습니다. ‘축 돐’,
‘돐잔치’ 할 때 모두 ‘돌’로 써야 합니다. 이번에는 ‘한번’의 띄어쓰기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언제 한번 꼭 뵙고
싶었던 사람’에서 ‘한번’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한 번’이라고 띄어 써야할지, ‘한번’이라고 붙여 써야할지 헷갈리잖아요. 이것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할 때의 이 ‘번(番)’이 차례나 일의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한 번’, ‘두 번’, ‘세
번’과 같이 띄어서 써야 합니다. 그러나 ‘한번’이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해 보다”라는 뜻일 때는 붙여 씁니다. 한번 먹어 보다/제가 일단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붙여 써야죠. 더 쉽게 설명 드려서, ‘한번’을 ‘두 번’, ‘세 번’으로 바꿔서 뜻이 통하면 ‘한 번’으로
띄어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한번’으로 붙여 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 네, 알고 보면 참
쉬운데요... 끝으로 하나만 더 소개해 주시죠!
성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죠? 가을에는 아무래도
책을 많이 보는데요. 책을 보다가 다른 일을 하고자 할 때, 지금 보던 부분을 뭔가로 꽂아놓죠? 그걸 흔히 책갈피라고 하는데요. 책갈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책갈피’는 “책장과 책장의 사이”를 말합니다.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갈피에 끼워 두는 종이 쪽지나 끈”은
‘갈피표’입니다. ‘갈피’는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 또는 그 틈”을 말합니다. 그래서 책장과 책장 사이의 틈이 바로
‘갈피’고, 그 갈피에 꽂아놓은 게 바로 ‘갈피표’입니다. ‘갈피표’는 ‘서표(書標)’라고도 하죠. 그러나 ‘책갈피’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정 아.. 오늘도 성제훈 박사님을 통해 잘못된, 혹은 잘 몰랐던 우리말에 대해 많이
공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