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날 앙골라와의 축구 평가전에, ‘붉은 악마’는 검은 셔츠를 입고 나왔다. SK구단이 K리그 연고지를 부천에서 제주로 옮긴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SK가 부천을 뜨는 걸 반대한다면, 그건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는 곳이 ‘제주라서’ 반대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어 보자. 제주도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최진철은 외국에서 꿔온 용병선수인가. K리그와 K2리그 서포터 회장단은, SK가 투자를 적게
해도 ‘감지덕지할’ 제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고 비난했다. 졸지에 ‘싸구려 제주도’가 되고 말았다. 제주도민의 가슴에 이런 식으로 대못을 박아도
되는 일인가.
그들은, SK의 제주유나이티드 경기 때 제주팬이 응원하는 것도 막겠다고 했다. 쓴 소주 놓고 삼겹살 구으며 해본 소리가
아니다. ‘붉은 악마’ 홈페이지에 올린 ‘비대위’의 공식 담화에 나오는 말이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초법적인 권한을 줬는가. “권력은 천사도
타락시킨다”고 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대로다. 권력을 잘못 쓰면 진짜 악마가 되는 수가 있다.
부천 시민이 섭섭해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붉은 악마’의 이름으로 제주도민을 욕보일 권리가 ‘붉은 악마’에게는 없다. 유래가 어찌 됐든 간에 ‘붉은악마’는 이제 국민
공유의 이름이 됐으며 그 국민의 범주에는 당연히 제주도민도 포함된다. K리그의 연고지 이전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가는 곳이 ‘만만한
제주’라서, 이번에는 손을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인가. 아무렴 그럴 리야. SK를 겨냥해 던진 돌팔매에 제주도민이 맞은 것일
뿐이리라.
‘붉은 악마’는 앙골라전 때의 검은 셔츠 퍼포먼스를 사과했다. 용서는, 하는 것보다 비는 것이 더 어렵다. ‘붉은 악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 사과문에도, 상처받은 제주도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한라일보 200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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