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삼겹살'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김형곤 씨.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가 지난 11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그는 오는 30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미국 동포들을 위한 코메디쇼를 앞두고 한창 연습에 몰입하고 있었다.
1960년 경북 영천 출신인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시사 풍자 코미디의 새 장을 개척했다. 재치있는 언변과 정곡을 찌르는 풍자로 큰 인기를 모았다. 미국 코미디의 황제라 불리던 밥 호프나 토크쇼의 황제 자니 카슨에 견줘도 큰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특히 5공화국 시절 KBS 유머1번지 가운데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는 코너에서 날카로운 풍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치에 대한 가감 없는 풍자로 암울했던 사회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지만 권력자라는 이유 때문에 비판받지 못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개그로 웃음을 통한 통쾌함을 선사했다.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비비거나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장면은 당시 전두환 정권과 억압된 권위주의 사회를 풍자함으로써 호응을 받았다. 또한 턱을 치는 장면은 당시 제2권력자였던 이순자씨에 대한 풍자였다. "밥 먹고 합시다"하면 "저거 처남만 아니면 잘라야 하는데"라는 유행어를 통해 족벌 기업체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탱자가라사대'에서도 정·경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을 했다.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은 한국 사회의 모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개그에는 창의력과 독창성이 번득였다.
1980년 T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코메디 프로그램 이외에도 KBS ‘시사토크 코미디 웃음 한마당’과 ‘김형곤쇼’ 등을 진행하며 토크쇼 형식의 시사 풍자 개그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 1999년 정치에 입문,이듬해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실패하면서 재산도 잃고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연극 무대로 눈을 돌린 그는 극단 곤이랑을 만들어 연극 ‘등신과 머저리’ ‘병사와 수녀’ 등을 올렸으며 뮤지컬 ‘왕과 나’,영화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도 출연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웃음 철학을 담은 에세이집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를 출간하기도 했다.
'웃음은 우리에게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며 죽기전 그의 홈페이지에 웃음에 관한 철학을 남긴 김형곤 씨. 이제 그가 떠나버림으로써 한국에서 사회 풍자 개그가 함께 떠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최근 텔레비전에서는 연예인 신변잡기나 가볍고 지엽적인 말재주 중심의 개그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곤씨의 타계를 계기로 한국 개그, 코미디의 방향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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