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조명·과거사 청산
진일보”
한라일보 : 200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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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송악산 해안가에 구축한 특공정기지를 탐사단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 |
갱도진지 실태규명·보존 전기 관심
지정대상 확대·체계적인 조사 시급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일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제주도내에 많은 군사시설을 구축한다. 일제 군사시설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제주의 오름이나 해안가, 심지어
한라산 고지대 깊숙한 곳까지 무차별적으로 구축한 갱도진지다.
이러한 갱도진지 등 일제군사시설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강점한
일본제국주의가 일본토를 사수하고 미군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섬과 도민을 볼모로 구축한 아픈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내에 남아 있는 일제군사시설은 갱도진지를 포함 대략 6백∼7백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광복 60주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오면서 그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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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목홈이 갱도 전체에 남아 있어 희귀성이 높은 새신오름
갱도. | |
이와 관련 본보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 탐사보도를 통해 일제군사시설을 집중 조명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관련 학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계기로 일제 당시 군사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는 물론 이를 통한 보존·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제주도와 문화재청 등이 갱도진지에 대한 근대문화유산 등록작업에 나선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아픈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과 과거사 청산의 차원에서 진일보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주도가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신청한 갱도진지는 어승생악·섯알오름·가마오름·사라봉·일출봉·서우봉·삼의양오름 갱도진지 등 7곳이다. 또 일제 당시 중국 대륙
폭격기지로 건설됐던 알뜨르비행장 등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등록문화재 지정 대상을 확대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실태조사와 보존·활용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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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갱도가 확인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굽은오름 갱도의
내부. | |
특히 본보 특별취재팀의 그동안의 탐사결과 제주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갱도가 잇따라 확인돼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도 문화재 등록작업후 실태조사 등 후속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가 지정신청한 대상 이외에 문화재
등록작업이 시급한 곳은 새신오름과 굽은오름, 이계오름, 월라봉, 논오름 등지의 갱도는 물론 송악산 해안가의 특공기지 등이
꼽힌다.
새신오름 갱도는 특별취재팀의 확인한 갱도만도 길이가 6백여m 정도에 이르는 데다 갱도 내부에 옹기편 등 많은 생활유물이
남아 있어 관심을 모은다. 굽은오름의 경우는 거대한 갱목홈이 갱도 전체에 원형대로 남아 있어 갱도의 희소성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계오름과 월라봉, 논오름에도 대규모 갱도가 구축돼 있고, 송악산 해안가의 특공정기지의 경우는 파도와 침식 뿐 아니라 인위적 요인에 의해서도
훼손이 계속되면서 하루 빨리 보존대책이 요구되고 이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박찬식 박사(제주 4·3연구소 연구실장·근현대사)는
“갱도진지의 문화재 등록작업은 다소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진지동굴’이란 명칭이나 문화재지정의 우선 순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전문가기고]“일괄적 ‘진지동굴’명칭 문제 우선순위 선정도 신중 기해야”
최근
제주도가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어승생악 갱도진지, 일출봉 특공기지 등 8곳의 일본군 군사유적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주도록 문화재청에
신청하였다. 일제 군사유적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높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역사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등록문화재로 지정 신청키로 했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학계나 언론계에서 이들 군사유적의 보존 가치를 역설해 왔다는 점에서 다소 늦기는 하지만 환영할 일이다.
이번 신청된
군사시설은 제58군 사령부 주둔 갱도진지 1곳, 제96사단 주둔 갱도진지 2곳, 제111사단 주둔 갱도진지 1곳, 알뜨르비행장과 연관된 시설
2곳, 해안 특공기지 2곳 등이다. 각 군사시설의 역사적 성격이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상황에서 선정되었지만, 이들 8곳은 군사시설의 각 유형별로
대표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앞으로 좀더 정확한 역사성 규명과 구체적인 보존방안의 수립을 위해 몇 가지 전제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 신청 유적의 명칭을 일괄적으로 ‘진지동굴’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들 군사시설은 일본군과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무자들이 인위적으로 파놓은 ‘갱도’라고 보아야 한다. 자칫 ‘진지동굴’이라고 하면 자연 동굴에 진지가 구축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1945년 제주도에 진지를 구축한 일본군이 남긴 기밀문서에는 ‘동굴식 갱도(洞窟式 坑道)’ 공사를 했다고 적혀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여러 군사시설 가운데 문화재 지정의 우선 순위 선정에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신청된 8곳은
2003년 제주도에서 발간한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의 기초조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와 한라일보 특별취재팀이 현장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시급히 보존해야 할 군사유적이 속출하고 있다. 안덕면의 논오름, 한경면의
새신오름·굽은오름 등의 갱도진지가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유적은 내부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데, 철저한 보존방안이 도출되지 못하면
곧바로 훼손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본군 군사시설을 왜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민 설득 및 교육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 군사시설은 일본군의 무력과 강제력 앞에 군말 없이 동원되어 고난을 겪은 징용자들의 애환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이들의 과거
실상을 헤아리고 역사적 기억을 되새기는 교훈의 현장임을 주지시키는 작업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박찬식/근·현대사, 한라일보
일제전적지 자문위원>
[등록문화재란?]“등록하는 것으로 재산권 제한
안돼”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에서 보존·활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뤄지게 된다. 등록기준은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 경과된 것이나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건설 후 50년 이상이 경과하지 아니한 것이라도 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가 일반 문화재와 다른 점은
등록하는 것으로 재산권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직접적인 훼손·파괴 등이 없으면 활용도 가능하다. 또 소유자는
수리·관리에 관하여 국가(문화재청)로부터 기술적 자문을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