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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일제하 일본군 주둔실태 15

마감된 자료-------/숨겨졌던日戰跡地

by 자청비 2006. 6. 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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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제111사단 주둔지 ⑫광해악의 갱도
내륙부에 위치한 ‘전진거점진지’


한라일보 : 2006. 06.15

▲넙게오름에서 다양한 형태의 갱도가 확인된 가운데 송이층으로 된 디귿자형 갱도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오름사면서 수직갱도 등 10여곳 구축 확인

 특별취재팀의 탐사는 제주 서부지역에 이어 서남부 지역으로 이어졌다. 태평양전쟁 말기 이 일대에는 일본군 최정예부대인 제111사단 1만2천명과 제108여단 2천명, 포병부대 등 2만명에 가까운 병력이 주둔한다. 거대규모의 병력과 중무장 화기가 이 일대에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없이 서남부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일본군은 서남부 해안가를 미군의 상륙지점으로 예상하고 내륙부와 해안가에 대규모 병력과 갱도 등 군사시설을 구축한다.

 일본군의 배치상황을 보여주는 제58군배비개견도 등에 따르면 제111사단 예하 243연대는 가마·새신·굽은오름 일대에, 제244연대는 이계·저지오름 일대 등 주로 서부지역 내륙부에 포진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245연대는 서남부 해안가인 안덕면 단산∼산방산∼월라봉∼군산을 잇는 라인과 논오름 및 내륙부인 광해악 등지에 주둔한다.

▲고사리 등으로 덮인 큰넙게오름의 디귿자형 갱도 입구

 광해악은 안덕면 서광동·서리 사이에 길고 넙적하게 누워있는 오름(표고 246.5m, 비고 40여m)이다. 높지는 않지만 오름사면이 완만하게 펼쳐진 모습이 넙적한 게처럼 생겼다고 해서 광해악(廣蟹岳), 즉 넙게오름이라 불린다.

 제58군배비개견도를 보면 넙게오름은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인 원물오름·당오름 앞에 위치한 ‘전진거점진지’로 나타난다.

 특별취재팀의 탐사 결과 실제 넙게오름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구축한 갱도 등 10여곳이 확인된다. 일본군의 주요 진지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또 지역주민의 증언도 이 곳 일대에 포병부대 등이 주둔했었다고 한다. 현재 확인되는 넙게오름의 갱도는 대부분 구축도중에 중단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탐사 결과 큰넙게오름에서는 디귿자형과 일자형의 갱도 등이 확인됐다. 족은(작은)넙게오름에서는 일자형과 수직갱도 등이 구축돼 있다. 갱도는 송이층으로 돼 있다.

 

 

 

 


 

▲족은넙게오름에 구축된 갱도. 붉은빛을 띠는 송이층을 파고 만들었다.
 큰넙게오름의 디귿자(ㄷ)형 갱도는 총길이가 20m 정도 된다. 서남서 방향으로 입구 2개가 12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양쪽으로 나란히 나 있으며 내부에는 별다른 흔적은 없다. 입구 폭은 150cm, 높이는 140cm, 내부 폭은 180cm에서 110cm다. 큰넙게오름에는 디귿자형 갱도 위로 9부 능선 지점에 야적장 흔적도 나타난다.

 또하나의 갱도는 오름능선을 가로질러 난 서광동·서리를 연결하는 시멘트포장도로 인근에 있다. 총 길이는 10m, 입구 폭은 150cm, 높이는 60cm 규모로 뚫렸으며, 갱도입구 앞에는 참호와 교통호 흔적이 뚜렷하다.

 족은넙게오름에는 수직갱도 1곳과 기역자(ㄱ)형 갱도 2곳 등을 볼 수 있다. 족은넙게오름 정상부에 있는 ㄱ자형 갱도는 총길이가 15m 규모로 중간부분이 위로 뚫려 있어 관측용으로 구축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수직갱도는 폭이 170cm×150cm, 깊이는 3m 정도이나 바닥이 일부 메워진 상태로 보아 옆으로도 뚫렸을 것으로 보인다.

▲족은넙게오름에 구축된 수직갱도 모습.

 넙게오름에 서면 남쪽으로 모슬봉·산방산·송악산 등을 볼 수 있다. 산방산과 넙게오름 사이는 수림이 우거진 곶자왈지대다. 오름 주변에는 수량이 풍부한 물통 6개가 있어서 ‘제주 4·3’ 이후까지도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도 수원지가 조성돼 있을 정도로 물이 많은 곳이다. 이러한 입지여건 등으로 인해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은 넙게오름과 주변 일대에 갱도 등을 구축하고 병력을 주둔하기에 이른다. 즉 넙게오름은 서남부 지역에서는 가장 내륙에 위치한 ‘전진거점진지’로서 의미를 지닌다. 해안가의 단산·산방산 등지와 제111사단 사령부주둔지인 원물오름·당오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거점 역할을 했다. /특별취재팀


[현장인터뷰]“일본군 수직굴 등 많은 갱도 구축”

안덕면 서광서리 오태순씨


“일본군들은 해방되기 전 해부터 넙게오름(광해악) 일대에 와서 갱도굴착 공사를 하기 시작했어. 정확히 어떤 부대인지는 잘 모르지만 당시 많은 일본군들이 철(쇠)구루마와 대포 등을 끌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지.”

 1945년 해방 당시 구억국민학교 3학년이었다는 오태순씨(1934년 생·안덕면 서광서리 2116번지)는 “많은 일본군들이 오름분화구 안에 주둔하면서 갱도를 팠다”고 말했다. “굴(갱도)은 횡으로 뻗은 굴도 있었지만 수직굴도 있었는데 일본군들은 도르레로 흙을 퍼내면서 파냈어” 하고 당시를 증언하는 오씨는 일제가 패망한 후에 지역주민들이 굴 안에 고구마씨 등을 보관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족은(작은)넙게오름에도 굴이 많았다는 오씨는 넙게오름 자체가 흙산이어서 주민들이 개간하면서 장비로 굴을 많이 메워버려 지금은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공출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당시 영양분 많은 목초인 ‘자골’이나 면화공출이 심했는데, 면화공출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광목’천을 상으로 주기도 했다는 것. 그러면서 조·보리 등 곡식을 재배해도 공출로 빼앗기다 남은 것을 감춰뒀다가 먹었으며, 면화도 많이 재배했으나 공출이 심해 옷도 마음대로 지어입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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