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출신의 가미키씨(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60여년전 제주에 주둔하면서 갱도진지 작업을 펼쳤던 일본인이 제주를 방문, 당시 자신이 주둔하면서 갱도진지를 구축했던 현장을
둘러보고 증언을 해 관심을 모았다.
주인공은 1945년 4월 12일쯤 제주에 상륙후 종전 때까지 제주에 주둔했던 관동군 정예부대로 알려진
제111사단 소속 가미키 사토루씨((神木悟·德島縣 阿南市·81세)이다.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농업지도원이었던 가미키씨는 징집령을 받고 1944년 11월 입대한다. 가미키씨는 곧바로 일본에서 부산항을 거쳐 만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신병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목포를 거쳐 제주에 들어왔다. 당시 가미키씨는 제주도라는 곳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만주에서 이동할 때도
처음엔 오키나와로 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목포에 도착하고 나서야 제주도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가미키씨가 제주에 상륙할 때는 4월 중순의 초입. 상륙후 이동하면서 정확히 어느 동네인지는 모르지만 벚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가미키씨는 한라산 중턱인 노루오름에서 달포정도 머물다가 다시 한경면 조수2리 굽은오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본격적인 갱도진지 구축작업이 시작됐다. 한경면 이 일대는 안덕면 지역과 함께 가장 갱도진지가 밀집된 지역이다. 특히 한경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제111사단은 3개 연대 1만2천여명의 병력으로 구성됐고 각종 화기로 중무장해 제주에 주둔한 3개사단 1개여단 가운데 최정예
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만나본 가미키씨는 작달막한 체구였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부진 모습에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당시 중대장 전령을 맡고 있어서 비교적 소상히 당시 지형과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미키씨 부대가 노루오름에 주둔하는 동안
보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병사들은 계곡에서 개구리와 도룡뇽, 뱀 등을 잡아먹고 산나물을 캐먹었다. 그러다가 중대원이 독풀을 잘못
먹어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5월말 쯤 산에서 내려와 굽은오름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주둔하면서 갱도진지 구축작업에 들어갔다. 마침 만주에서
보내온 보급품(식량)이 도착했으나 너무 오랜 시간으로 쌀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밀가루는 굳어버려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중대장의 지시로 갱도진지 구축작업을 벌였다. 파고 들어가면서 갱목을 놓으면서 공사를 벌여 나갔다. 밤 사이에 천장이
무너지기도 했다. 변변한 장비가 있을 리 없다. 오로지 곡괭이와 삽 뿐이었다. 토사를 들어내는 것도 지개를 만들어 사용했다. 70m길이의 갱도가
완성됐다. 이제 갱도안에 2~3개의 방을 꾸미면 갱도진지 구축이 최종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8월 15일 앞으로 군가를 부르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17일 부대 창설일로 전 부대원이 정복을 입고 거창하게 군기제가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군기제는
정복도 입지 않고 간단하게 마무리됐다. 이어 중대장이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만 말했다. 이겼다는 말인지, 졌다는 말인지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다만 중대장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패했다고 생각했다. 가미키씨는 이 전쟁에서 일본군이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왜 전쟁이 끝났는지 처음엔 이해를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어쨌든 대부분 병사들은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들뜬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전쟁은 이렇게 끝났다. 종전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인 징용병사들은 곧바로 집합시켜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군 병력은 총, 검을 반납하고 무장해제됐다. 10월말 비로소 굽은 오름에서 벗어나 밤새도록 행군끝에
제주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며칠 머물다가 선박편으로 일본으로 귀향했다고 말했다.
가미키씨가 주둔하는 동안
전령이어서 이따금 부대를 벗어나 마을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마을에 들렀을 때 한 마음씨 좋아보이는 할아버지가 허기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지실'(감자의 제주사투리)을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가미키씨는 한국말을 모르지만 아직도 지실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미키씨에게 당시 군인으로서 느꼈던 감정과 60년이 흐른 지금의 감정을 얘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가미키씨는 입대 당시
군인이 된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때 패망이라는 생각보다는 지긋지긋한
생활을 털고 고향에 돌아가게 됐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들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미키씨는 제주에 주둔하는 동안 이따금 공습경보가 울려
비상이 걸리고 갱도진지 구축을 위해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과연 이곳이 전장터일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생활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가미키씨는 "예전부터 제주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60여년만에 비로소 제주를 다시 찾게 됐다.
그러나 60년이라는 세월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 버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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