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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박치기

세상보기---------/마음대로 쓰기

by 자청비 2006. 7.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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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프로레슬링 선수인 김일이다. 1960~1970년대 흑백TV도 귀하던 시절. 프로레슬링 중계가 있다고 하면 동네 하나밖에 없던 TV앞에 온동네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초반엔 외국인 프로레슬러의 반칙에 고전하던 김일 선수가 마침내 박치기로 외국인 선수들을 링바닥에 눕히는 모습을 보며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한쪽 다리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면서 상대의 머리를 들이 받는 모습은 당시 가난하고 힘겹게 생활하던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프로레슬링 파문이후 인기가 하락하면서 박치기도 잊혀져 갔다. 그런데 그 박치기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되살아났다. 프랑스 축구의 마에스트로 지단이 월드컵 결승, 그것도 자신의 축구인생을 마무리하는 은퇴경기에서 머리로 이탈리아 선수 마테라치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지구촌 축구팬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로 세계가 떠들썩 하다. 사건 당사자가 침묵하자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독순술 전문가를 동원해 당시 상황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분석, 보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단이 입을 열고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심한 욕설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지단을 소재로 한 '박치기'라는 제목의 노래도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지단은 입을 열었으나 구체적으로 심한 욕설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욕설이라는 것은 대체로 '매춘부의 아들'운운이라는 표현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마테라치 측은 어머니를 욕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머니에 대한 욕설은 같은 유럽권에서도 나라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소 다르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이 욕설이 그렇게 심한 욕이 아니지만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카톨릭권 국가에서는 입에 담기 힘든 욕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서는 16세기에 헨리8세가 카톨릭과 담을 쌓고 성공회를 만들면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경배가 사라진 반면 독실한 카톨릭 국가인 남 유럽의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에서는 성모 경배의 전통이 이어진 때문이다.


이 전통은 이들 나라에서 어머니의 문화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일 이탈리아에서 누군가가 상대의 어머니를 성적으로 조롱하는 욕을 한다면 그는 금기시 되는 욕을 한 셈이다. 반면 영국은 '힙합'으로 압축되는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어머니에 대한 욕에 더 관대(?)해졌다.


사회언어학자인 데보라 카메론은 욕설에 대한 유럽 각국의 문화적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금기시되는 말은 악마와 관계된 말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성교에 대한 말을 금기시한다. 반면 지중해 문화에서는 아들과 그의 어머니 사이에 고전적으로 존재하는 관계가 있는데, 예컨대 이탈리아에서는 그들의 어머니들을 숭배한다. 따라서 이탈리아에서 어머니를 욕하면 그것은 신성한 모자간 관계를 욕하는 것이 된다."


욕설은 야비한 말로서 악의와 공격성을 띠게 된다. 저주하거나 미워하는 말 또는 명예를 더럽히는 말 등으로 정리될 수 있는 욕설은 말에 의한 일종의 폭력이다. 특히 욕은 상대방에 대한 반감이나 적의를 지닌 사람이 말폭력으로 상대방을 자극해 심리적으로 흐트러지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승리를 목표로 하는 의사전달 행위이자 말 표현의 일종이다. 그러고보면 이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은 축구실력의 우승이 아니라 심리전의 우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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