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수월봉 특공기지
바닷물 빠지면서 모습 드러낸 특공정
유도路
한라일보 : 2006년 0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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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면 수월봉 해안에 일제가 구축한 특공기지 앞에서 바닷물이 빠지자 모습을 드러낸 특공정 유도로
시설. | |
1945년 3월 편성 제120진양대 ‘오노’ 주둔
일제 구축 군사시설 체계적 조사연구
시급
수월봉 앞 해안까지 밀려왔던 바닷물이 빠지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태평양전쟁 당시의 특공정 유도로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갈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유도로 시설은 해초 등이 달라붙어 있어 60여년 세월을 실감케 했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22일과 24일 조사에서 처음 확인한 유도로 시설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특공정인 진양을 갱도 안에 숨겨 놓았다가 미군함정이 나타나면 바로
발진해서 자살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유도로 시설은 처음에는 수월봉 해안의 특공정격납고(갱도)와 연결돼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유도로 시설에서 해안 갱도까지의 거리가 60m 정도 되는 점으로 미뤄 유도로는 적어도 70m는 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60년 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파도 등에 의해 파괴돼 남아 있는 10여m만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해안가에는 유도로 시설 잔해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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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국서간행회가 발간한 사진집 ‘인간병기 진양특별공격대’에 실린
사진. | |
특별취재팀은 또 취재과정에서
수월봉 특공기지에 주둔했던 구일본군 진양대와 관련된 사진자료를 발굴했다.
일본 (주)국서간행회가 발간한 사진집인 ‘인간병기
진양특별공격대’에 실려 있는 이 사진은 실제 일본 해군 자살특공대원들이 배치됐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이 사진에는 ‘昭和 20년 5월
제주도 고산리 소학교 전(前)’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어 1945년 5월에 당시 고산국민학교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임을 알 수 있다.
고산국민학교에는 실제 진양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월봉 해군특공기지에는 어떤 부대가 배치됐을까.
이 곳에는
제120진양대인 오노(小野)부대가 주둔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120진양대는 1945년 3월 25일 편성된다. 총 병력은 1백91명으로 ‘진양
5형’ 26척을 보유했다. 진양대가 제주를 향해 출발한 것은 1945년 4월 6일이다. 수송선인 성산환으로 사세보항을 출발, 8일에 45진양대가
성산포에, 119진양대는 서귀포에 상륙한다. 고산에 주둔한 진양대는 4월 9일 한림에 상륙한 뒤 4월 29일에 고산국민학교와 민가로 대부분
이동한다. 이들 제120진양대 기지가 바로 수월봉 해안이다. 지금도 수월봉 해안에는 10여 곳의 갱도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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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震洋)이란=구일본해군 유일의 수상특공정으로써 승원 1명의 1형과 2명이 타는 5형이 있다. 이
특공정은 뱃머리에 2백50kg의 폭약을 싣고 자동차 엔진을 탑재하여 나무합판으로 만든 고속보트를 말한다. 적의 상륙부대가 상륙지점에 진입하는
전후에 밤의 어두움을 틈타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하여 선박을
격침시킨다. | |
일제가 제주도내 해안에
만든 특공기지는 모두 5곳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위기에 몰리자 1945년 들어 오름 등에는 대규모 갱도를, 해안가에는 미군 함정에 직접 부딪쳐
침몰시키기 위한 자살특공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대정읍 송악산을 비롯 조천읍 서우봉, 서귀포시 삼매봉, 성산읍 성산일출봉과 한경면
수월봉 해안가는 일제의 비밀특공기지였다. 지금도 이 곳에는 당시 일제가 파놓은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제주도에 배치됐거나
배치예정인 일본해군의 특공부대는 회천(回天·카이텐)과 진양(震洋), 교룡(蛟龍), 해룡(海龍) 등이었다.
이 가운데 카이텐기지는
송악산과 서우봉에 구축됐으나 실제 배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일출봉과 삼매봉, 수월봉은 진양기지로 실제 일본군이 주둔했다. 이번에 확인된
유도로 시설은 이 같은 진양대의 실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사현장이다.
이에 따라 당시 해안특공기지 뿐 아니라 일제가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구축한 각종 군사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현장인터뷰/한경면 고산리 강공익씨]“해안가 굴과 연결… 점차 훼손돼”
“당시
수월봉은 통제구역 이었어. 일본군들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뒤 곡괭이와 삽으로만 굴을 팠어. 수월봉 앞에 보이는 콘크리트 시설은 보트를
접안시켜 굴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든 시설이야. 원래는 더욱 길었는데 지금은 많이 파괴돼버린 거지.”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강공익씨(1936년 생·사진)는 당시 수월봉 일대 일본군 주둔상황에 대해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씨는 광복 당시 9살로 고산국민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강씨에 따르면 수월봉 앞 해안가는 통제구역으로 일본군들이 비밀리에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로 된 시설물은
해안가에 파놓은 굴(갱도)과 연결되도록 했었지. 그 후 광복이 되고 파도에 의해 시설물이 점차 파괴돼버린 거야.” 강씨는 또 당시 실제로
보트(진양특공정)가 왔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한장알(고산리 한장동 해안가)에는 일본육군 1개소대가 주둔하면서
갱도를 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갱도 입구는 갱목을 세웠는데 마을주민들이 뜯어다가 집을 짓는데 썼어. 당시 일본군 소대장은 히로세 중위로
기억해. 그 놈들은 굴 앞에 포대(고사포)를 설치하고 바다에 목표물을 띄운 뒤 자주 사격연습을 했어.”
그에 따르면 수월봉
주변에는 기마부대도 주둔했었다는 것. 일본군들은 전쟁에서 패하자 말 50마리 정도를 도살시켜 한장동 근처 경작지에 묻었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