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제111사단 주둔지 (21)모라이오름
소규모 갱도·함몰흔적 등 관심
한라일보 : 20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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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전 일본군이 사용했던 갱목으로 지은집 내부 모습. | |
일본군 위장진지 갱도 등 구축
특별취재팀이 집중 탐사한 단산∼산방산∼월라봉∼군산∼논오름 라인은 한마디로 일본군의 거대한 군사요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름 곳곳에 파놓은 대규모 갱도와 토치카 등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은 이 일대에 보병은 물론 포병부대, 야전병원 등을 두고 제111사단의 가장 강력한 주저항진지를 구축했다. 주저항진지(主抵抗陳地)는 말 그대로 주력을 다하여 방어해야 하는 진지다.
주저항진지 주변 일대에는 위장진지를 구축해 놓기도 한다. 위장진지(僞裝陣地)는 ‘적’의 포 폭격을 흡수하거나 작전을 교란하는 등 ‘적’의 진행방향을 틀리게 할 목적으로 만든 진지다. 제111사단 주둔지 중 위장진지는 가시오름(대정읍), 모라이오름(서귀포시 색달동) 두 곳으로 알려진다.
특별취재팀이 찾은 모라이오름(표고 511m .비고 60m)은 전체가 둥글넙적하고 완만한 사면을 이룬다. 평화로에서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산록도로변에 나지막히 솟아있는 오름으로 사면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등이 무성하다.
모라이오름에서 대규모 갱도의 실체는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소규모 갱도와 갱도가 무너진 흔적 들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특별취재팀이 모라이오름에서 확인한 소규모 갱도는 정상부분에 위치한다. 주변이 잡목으로 무성한 이 갱도는 붉은 송이층으로 이뤄져 있다. 정남 방향으로 난 갱도 입구는 폭 80cm, 높이는 120cm 정도로 좁다. 전체길이는 15m 정도로 입구에서부터 5m 지점까지는 30도 정도의 경사를 이룬다. 그 부분을 지나면 갱도는 천장이 함몰되면서 폭이 넓어지고, 높이 또한 3m 정도에 이르는 구간이 나타난다. 내부 양쪽 벽면에는 등잔홈 등이 눈에 띈다. 이 갱도는 전체적인 양상으로 보아 공사를 진행하다가 도중에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팀은 또 모라이오름 서사면 5부 능선쯤 지점에서 무너져 내린 갱도흔적 2곳을 추가로 찾아냈다. 무너진 현장 주변에는 석축도 자리하고 있어 시선을 끈다.
취재팀이 만난 색달동 주민들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당시 모라이오름에는 여러 곳에 갱도가 구축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민들은 이와 관련 “해방 후에 일본군이 판 굴(갱도)속에 송아지가 떨어지는 바람에 꺼내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이 때문에 굴을 메워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증언으로 미루어 당초에는 보다 많은 갱도가 구축됐으나 6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입구가 막혀 확인되지 않거나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함몰 흔적들은 아마도 이와 연관지을 수 있지 않나 추측된다.
/특별취재팀
[탐사포커스]60여년 전 갱목으로 지은 집 첫 확인
안덕면 대평리 이두옥씨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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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이오름의 소규모 갱도 입구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사진 맨 위)과 갱도내부를 취재팀이 조사하고 있다(가운데). 아래 사진은 무너진 갱도 모습. | |
일본군이 판 갱도내부의 갱목 등 많은 목재들은 어떻게 했을까.
갱도내부의 갱목들은 광복 후 대부분 인근 지역주민들이 가져다 집을 짓거나, 혹은 당시 국민학교 건물을 지을때 사용했다. 그 과정에 갱목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주민들간 갈등과 다툼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군들은 갱목을 물물교환 등으로 주민들에게 팔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갱목으로 만든 집이 61년이 지난 지금도 온전히 남아있어 관심이 집중됐다.
특별취재팀은 지난달 23일 모라이오름 탐사과정에서 당시 갱목으로 지은 집이 있다는 증언을 듣고 현장을 찾아 나섰다. 취재팀의 관심을 끈 그 집은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 843-8번지 18평짜리 가옥으로 기와지붕을 하고 있다.
집주인인 이두옥씨(77)에 따르면 원래 주인은 대평리 김두옥씨 부친으로 당시 월라봉 주둔 일본군으로부터 갱도를 인도받았다. 이씨는 “당시 이 마을 계원 5명이 일본군으로부터 목재를 인수했는데, 이 목재를 김두옥씨 부친이 다시 인수해서 1945년 10월 쯤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갱목은 대규모 갱도와 토치카가 구축된 월라봉 주변의 밭에 천막집을 만들면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막집은 일본군 장교들이 이용한 시설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원래 주인으로부터 이 집을 구입한지 41년쯤 됐다(매매가는 30만원 정도로 기억)는 이씨는 “문짝만 제외하면 기둥나무나 판자 등 전부 당시 그대로이고 한번도 집을 고쳐본 적이 없다”며 “어디 한군데 썩거나 벌레가 일지 않는 등 아직도 짱짱하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이 집 내부를 둘러본 결과 길이가 각각 182cm, 80cm, 직경이 12cm, 13cm인 나무기둥이 10여개 이상 위아래로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갱도내부에 갱목을 설치했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다. 갱목 접합부분을 잇는 이음쇠도 당시 것이라고 집주인은 말했다. 나무 역시 두드리자 쇠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했다. 지붕을 덮은 기와는 대마도산이다.
이씨는 “성만 다르고 이름은 같은 ‘두옥’의 집을 산 것도 묘한 인연”이라고 웃으며 “대평리에서 민박집을 제일 처음 할 만큼 아직도 어디 하나 허술한 구석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