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군사시설 문화재등록 의미와 과제
아픈 역사 현장
61년만에 ‘햇빛’
한라일보 : 20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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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구축한 군사시설이 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 위로부터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알오름의 고사포진지, 서우봉해안의 특공기지, 한라산 어승생악의 토치카. /사진=이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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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의 장’· ‘전쟁유적’ 가치 인정
도내 산재 日 군사시설 실태조사 시급
본보 작년부터
탐사보도 통해 집중 조명
일제의 침략야욕을 보여주는 일본군 군사시설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이 지난 19일자로
‘알뜨르비행장’ 등 제주도내 일제 군사시설 12곳에 대해 근대문화유산 등록예고에 들어간 것이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12곳의 일제
군사시설은 갱도진지와 해안가의 특공기지, 비행장의 격납고 시설·벙커, 고사포 진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등록 예고된 일제
군사시설은 ▷사라봉(갱도) ▷어승생악(갱도·토치카) ▷가마오름(갱도) ▷서우봉(갱도) ▷알오름(갱도) ▷일출봉(해안 특공기지) ▷알뜨르비행장
▷송악산 해안절벽(특공기지) ▷모슬봉(탄약고·발전시설) ▷이교동(통신시설) ▷알오름 고사포진지 ▷송악산(갱도) 등이다.
이들 일제
군사시설들은 제주도민으로서는 한이 서린 고통스런 역사현장으로 남아 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으로 기울자 미군 등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고 일본토 사수를 위해 제주섬을 병참기지화 하기에 이른다. 알뜨르비행장의 경우 중국 대륙 전진기지로서 1931년부터 본격 조성되고,
나머지 갱도 등 군사시설은 1944년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구축된다. 모두 6백여 곳 이상 되는 이러한 군사시설은 제주도민을 ‘제2의
오키나와’처럼 옥쇄화 하려는 일본 제국주의 전쟁야욕의 산물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제주도처럼 일제 군사시설이 대규모로 잘 남아
있는 곳은 없다”며 “일 본토에 비해서도 그 규모나 집적도, 시설의 다양성 면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제 군사시설들은 그동안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면서 훼손·파괴가 이뤄져 왔다. 학계나 언론에서는 그동안 아픈 역사현장을 산교육의 장으로
보존·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해 왔으나 당국은 미온적 대처로 일관해 왔다.
이와 관련 본보는 특별취재팀을 구성 지난해부터 대하
탐사보도물인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를 통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군사시설의 실태를 고발하고 역사적 조명을 통해 보존·활용방안
마련을 촉구해 왔다.
그런점에서 광복 61년만에 이뤄진 근대문화유산 등록은 제주도민의 아픈 역사와 과거사 청산의 차원에서 진일보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일제가 파놓은 ‘갱도진지’에 대한 문화재 등록은 국내 첫 사례로 기록된다. 전쟁유적으로서 그 가치가 비로소 조명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근대문화유산 등록대상 일제 군사시설에 대한 역사성 규명과 보존·활용방안
수립이다. 등록대상 군사시설은 그동안 제대로운 실태조사나 역사적 의미, 제주도민의 강제동원 피해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실태조사 및 보존·정비방안이 나와줘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과 제주도,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모슬포 알뜨르비행장과 송악산 산방산 평화박물관을 잇는 관광상품을 내년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또 하나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대상 확대지정 필요성이다.
제주도내에는 등록대상으로 예고된 것 이외에도 많은 일제 군사시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대형갱도와 토치카 시설 등이 있는 월라봉이나 논오름 새신오름 굽은오름의 일제 군사시설과 수월봉 특공기지 및
토치카·갱도 등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그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보 특별취재팀의 탐사결과 이들 지역의 군사시설들은
인위적·자연적으로 심각한 훼손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제주섬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일제군사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제 군사시설의 역사성 규명 및 제주도민의 강제동원과 정신적 물질적
피해, 일본군 주둔실태 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전문가 리포트]“평화
위한 소통·연대의 장으로”
‘묻지마라
갑자생’의 의미를 기억하는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쓰라린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갑자년(1924) 출생의
사람들. 그들은 태평양전쟁기의 징용과 징병, 해방공간의 좌우대립, 제주 4·3, 한국전쟁 등을 경험하면서 80%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에는 이러한 갑자생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알뜨르·정뜨르·진뜨르·교래 비행장, 갱도진지, 포대, 참호, 고사포진지, 특공대기지,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등 제주도
곳곳에는 일제군사시설이 구축됐다. 더구나 옥쇄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해안 및 중산간 지역의 오름 지하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수많은
갱도진지들이 마련됐다. 당시 군사시설 구축에 혈기왕성했던 17∼20세의 갑자생들이 대부분 징용·징병 등으로 강제 동원됐다.
이러한
일제군사시설 중에 문화재청은 알뜨르비행장 등 12건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지정예고에 들어갔다.
제주는 일제수탈과 전쟁의 만행을
고발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너무나 방치되어 있었다.
일제의 잔존물을 왜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 식민잔재를 비판하는 것과 일제군사시설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별개이다. 특히,
우리는 일제의 수탈과 전쟁에 대한 만행을 역사에 고발하기 위해서라도 그 잔존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현장을 보존함으로써 역사교육현장으로 삼아야 할
당위성이 있다.
알뜨르비행장 일대가 국방부 소유 토지라는 이유로 문화재 지정 신청이 연기되거나 보류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정말 불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사용 토지라는 이유로 일제의 전쟁 만행을 고발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을 방치했다는 불명예를 국방부
스스로 초래해서는 안될 일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토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국방부의 열린사고를
기대한다.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이다. 말로만 평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평화철학이 마련되어야 한다. 평화철학이 구축되려면 이를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과학화시킬 수 있는 자료의 축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에따라 일제군사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해야
하는 과제가 대두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나서주길 기대한다.
더욱이 ‘평화의 섬 제주’로서의 세계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자산은 없을 것이다. 평화의 올바른 기억과 성찰, 평화를 위한 교육과 문화의 장,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및 세계 각국의 소통과
연대의 장으로 제주가 승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동전/제주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