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에 떠오르는 잡념
사는 건 정말 오묘하다. 어릴 땐 나이를 먹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싫어진다. 시간이라는 놈은 도무지 알 수 없다. 어릴 땐 질기게 안 가더니 언제부턴가 쏜살처럼 지나간다.
두 해 전부터인가. 프랑스 서부도시 낭트에서는 세밑이면 새해를 축하하지 말고 저지하자는 시위가 열린다. 세월이 가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이다. '새해반대전선'이라는 뜻의 '포나콩(FONACON)'이라는 단체가 시위를 주도한다. 그들은 주장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지구와 우리가 무덤으로 한 발짝씩 더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새해는 비극이며 인간은 이 비극을 기뻐할 이유가 없다"고.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죽었을 때 한 장례식 참석자는 "나는 그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 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포나콩의 주장은 이 말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그들도 시위를 통해 새해를 오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시위는 늙음과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또 그 숙명을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무력감의 토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새해 반대 시위'는 삶을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오만한 자세로는 진지한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준다. 그래서 그들의 무모한 저항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세월과 맞서 싸우려던 이가 있었다. 고려말엽의 우탁(禹倬)이다. 그는 "한 손에 가시쥐고 또 한 손에 매를 들고 /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매로 치렸드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며 탄로가(嘆老歌)를 읊었다. 애써봐도 결국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양자는 "사람이 1백살을 산다고 해도 거기서 어린시절과 노인시절, 잠자는 시간과 깨어 있어도 헛되이 보내는 시간,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근심하고 두려워 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만족하며 보낸 날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영원히 시간이 모자랄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시간을 모두 가진 듯 여유롭다.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인데도 그 시간의 흐름, 즉 세월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있다면 세월과 화해하는 유일한 길은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고은의 석 줄짜리 시「헤어질 때」를 빌어 2007년을 보내야겠다. "잘 가시오 / 잘 가시오 / 이 말이 이 세상 전체를 아름답게 한다."
태산인가? 빙산인가? (0) | 2008.02.12 |
---|---|
"새해가 주는 선물, 새 희망" (0) | 2008.01.07 |
'삼성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 (0) | 2007.12.04 |
한글날에 떠올린 짧은 생각 (0) | 2007.10.18 |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건만… (0) | 2007.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