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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도 갈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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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8. 8. 2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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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 수 있었던 내 몸은 날듯이 가벼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 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박완서 '꼴찌에게 갈채를' 중에서)

 

베이징올림픽이 중반을 넘어섰다. 한국 대표선수 25개종목에 2백67명은 매 순간 땀과 열정으로 각본없는 드라마를 만들며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즈음 언론의 관심도 온통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쏠려 있다. 그러나 순간순간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있다. 금메달에만 집착해 은·동메달을 낮게 보거나 인기종목에만 집착해 비인기종목을 외면하는 경우다. 방송 3사가 꼭같은 화면을 보여줄 때도 그렇다.

 

그나마 낫다. 한국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예선에서 탈락해 메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비인기종목 선수들이다. 이들은 예선탈락후 곧바로 귀국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이들의 소식은 들을 수 없다. 꼴찌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사회, 그것이 한국사회다.

 

몇해전 방송 광고문구였던 '역사는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1등 지상주의를 외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내세운 오만방자한 광고문구였다. 1등만이 기억되는 사회에서 2, 3등도 아닌 수많은 저 뒤편의 등외자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픈가. 정직하게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만 존재한다.

 

올림픽은 전세계인의 축제라고 한다. 축제에는 패자도 승자도 없다. 모두 어울려 한마당 잔치가 이뤄져야 한다. 올림픽은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들에게 칭송과 찬사를 보내는 한마당이다. 비단 올림픽만이 아니다. 모든 경쟁은 승자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다. 패자가 있기에 승자가 있고 그래서 경쟁은 잔치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럴려면 승자에게 보내는 뜨거운 축하만큼 패자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내야 한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승리지상주의와 승자 독식이 판치는 작금의 국내 정치판이라면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가이자 저술가인 볼프 슈나이더는 '위대한 패배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리자로 가득 찬 세상보다 나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200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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