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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에 한글의 미래

세상보기---------/마음대로 쓰기

by 자청비 2008. 10. 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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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자연(天地自然)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그에 맞는 글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곳곳의 풍토가 서로 구별되기 때문에 말소리의 기운도 서로 다르다. 대부분 외국의 말은 그 말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어 사용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둥근 구멍에 네모난 자루를 낀 것과 같이 서로 어긋나는 일이어서 어찌 능히 통하고 막힘이 없겠는가. 요컨대 글자란 각자 살고 있는 곳에 따라 정해질 것이지,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중에서-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글이 오는 9일 562돌을 맞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한글의 우수성과 중요성, 보존 필요성에 대해 곳곳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실제는 어떤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까지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가 넘쳐난다. 이런 현상은 최근들어 더욱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륀지'로 시작된 영어조기교육 광풍은 한글의 설자리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행정기관에서조차 정체불명의 영어단어가 남발된다. 신문과 방송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지면과 전파를 통해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확산시킨다. 게다가 사회영역별로 고도의 전문화·분업화가 이뤄진 결과 이제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말하고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글은 극심한 어휘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상에 사용되던 언어는 한 때 1만2천종이 넘었으나 이제는 6천8백종(2005 유엔보고서 기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수천종의 언어가 사라졌다. 언어의 사멸은 곧 그 언어를 사용하던 종족의 멸종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중원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청(淸)왕조를 세운 만주족의 언어(만주어)가 사멸 위기에 놓였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이는 한족의 이민족 말살정책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청왕조 당시 지배층들이 스스로 한족에 동화되기 위해 만주어를 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면서 우리 말글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게다가 인터넷 공간에서 한글맞춤법 및 문법의 파괴가 가속화되면서 우리말글살이는 더욱 어지러워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한글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20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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