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보부상이라 하여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중간 역할을 했던 전문적인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전투에서 수천 명의 부상들이 동원되어 식량과 무기를 운반·보급하고, 직접 전투에도 가담하여 왜군을 물리치는 데 공헌하는 등 나라를 위한 일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보부상(褓負商)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으로 나뉩니다. 보상은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비싼 사치품 따위를 판매했는데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팔았기에 ‘봇짐장수’라고도 불렀습니다. 또 부상은 조잡하고 유치한 일용품 따위의 가내수공품을 주로 팔았으며,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기 때문에 ‘등짐장수’라고도 합니다. 요즘 보부상이 아닌 부보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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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80. 장인이 장이로 바뀐 결과 (2006/05/13)
백제에서는 기와 장인을 ‘와박사(瓦博士)라고 불렀고, 6세기 후반 이들을 왜국에 파견하여 기와제작법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제 때는 와박사를 비롯한 장인들이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의 탈해왕은 자신을 본래 단야(鍛冶), 즉 대장장이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신라와 가야의 대형 고분들에서는 집게, 망치, 숫돌, 받침모루 따위의 대장간 도구들이 출토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루어 볼 때 대장장이 집단이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우받던 장인들은 조선시대엔 장이로 전락합니다. 가죽공예의 장인을 ‘갖바치’라 하고, 대장아이, 옹기장이 따위로 불리며, 상민이나 천민 등 하층계급으로 천시를 받습니다. 장인들의 이런 신분추락은 결국 뛰어난 겨레문화가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맥이 끊기는 안타까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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