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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7. 6.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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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백성들 삶의 질 향상에 정성을 쏟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7. 06. 25.
 
 

 

 

      
       세종은 백성을 끔찍이 사랑하는 임금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리후생 정책에도 정성을 쏟았습니다. 우선 세종은 농사직설을
       펴내고 농법을 조선에 맞게 개량ㆍ보급해 토지 1 결당 쌀 생산량을 최고 4배까지
       증가시킵니다. 또 의녀 제도를 온 나라에 확산시켜 부녀자들의 의료조건을
       개선하고, 산모와 남편의 출산휴가를 주었으며, 죄수의 생명보호를 위해 감옥
       안에서의 사망자 상세보고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분의 귀천없이 80살이 넘으면 임금이 벌이는 양로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으며, 화재의 위험이 큰 도성의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고, 온돌과 
       마루를 온 나라에 보급시켰습니다. 또 제생원 제도를 개선해 버려진 아이들의
       죽음을 막기도 합니다. 세종임금은 이렇게 백성의 행복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임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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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80. 장인이 장이로 바뀐 결과  
(2006/05/13)

    

       백제에서는 기와 장인을 ‘와박사(瓦博士)라고 불렀고, 6세기 후반 이들을 왜국에
       파견하여 기와제작법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제 때는 와박사를 비롯한
       장인들이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의 탈해왕은 자신을 본래
       단야(鍛冶), 즉 대장장이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신라와 가야의 대형
       고분들에서는 집게, 망치, 숫돌, 받침모루 따위의 대장간 도구들이 출토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루어 볼 때 대장장이 집단이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우받던 장인들은 조선시대엔 장이로 전락합니다. 가죽공예의
       장인을 ‘갖바치’라 하고, 대장아이, 옹기장이 따위로 불리며, 상민이나 천민
       등 하층계급으로 천시를 받습니다. 장인들의 이런 신분추락은 결국 뛰어난
       겨레문화가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맥이 끊기는 안타까움이 되었습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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