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서구열강을 보라. 학술의 발달이 저 같으며 도덕의 진보가 저 같으되 그 나라가 기운차게 일어나 날로 강성해가니 이는 그 문화가 동양 고대처럼 인민을 몰아서 전제하(專制下)에 굴복하게 하던 문화가 아니라 자유를 구가하며 모험을 숭상하는 문화인 까닭이니 한국의 뜻있는 군자여! 자국 고유의 장점을 보존하며, 외래 문명의 정화(精華)를 채취해서 신국민을 양성할만한 문화를 진흥할 지어다.”
위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민족지도자 이상재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1910년 2월 19일자에 쓴 ‘문화와 무력’이란 제목의 논설 일부입니다. 이는 국수주의나 사대주의가 아닌 우리 고유문화의 장점 위에 다른 문명의 우수한 것을 더하여 국민을 이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자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요?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65.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왜 북한산에 올랐을까? (2006/04/28)
추사(완당)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 문신, 문인, 금석학자입니다.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했고, 서예에서는 조선 최고의 명필로 칭송받습니다. 특히 그는 1816년 그동안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조선 건국 때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라는 그동안의 이론을 뒤엎습니다. 7월 무더위 속을 뚫고 비봉에 올라 그곳에 있던 비의 탁본을 합니다. 그 뒤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비문을 판독한 다음 그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실제로 확인해보고 철저히 조사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렇게 확인하고, 조사하여 따져 물은 뒤에 얻은 지식이어야 진리라 할 수 있다.” 대학자 추사의 진면목이 보이는 말입니다. 대학자 추사는 그저 탄생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