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균관은 최고 교육기관이었는데 500년 조선 역사를 통해 이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가 96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위는 우선 편전 앞에서 “아이고” 상소를 합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수업을 거부하고 밥을 먹지 않는 권당(捲堂)을 합니다. 이래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젠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공관(空館)입니다. 이러면 임금의 통치력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이 됩니다.
세종 때 임금이 대궐 안에 불당을 세우자 성균관 유생들이 공관을 감행했습니다. 그러자 조정에서 이들에게 갖은 압력과 회유를 했지만 공관을 풀지 않자 나이가 여든이 넘은 황희 정승이 유생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한 끝에 겨우 해결했습니다. 시위를 한 유생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세종임금의 너그러움과 노정승의 노력으로 해결했습니다.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327. 와송주(臥松酒)를 아십니까? (2005/05/22)
우리 겨레는 소나무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들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나무는 우리의 중요한 먹거리였습니다. 솔잎으로 송편을 해 먹었으며, 송홧가루로 다식(茶食:차를 마실 때 먹는 한과)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笭)은 약제로 썼으며, 송이버섯은 좋은 음식재료입니다. 또 솔잎주와 송화주(松花酒:송화를 줄기 채로 넣고 빚은 술), 송순주(松筍酒:소나무의 새순을 넣고 빚은 술)를 빚어 마셨습니다.
또 비스듬이 누운 소나무로 빚는 술, 와송주가 있습니다. 누운 소나무의 몸통을 말밥통 모양으로 뚫은 다음 그 속에 술을 빚어 넣고, 소나무 판자로 뚜껑을 만들어 덮은 다음 진흙으로 단단히 봉합니다. 그 위에 풀을 덮어 비가 들어가지 않게 하고, 발효된 뒤에 마시면 맑은 향기가 입을 가득히 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