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정해진 시각마다 십이지신 모양의 나무인형이 팻말을 가지고 나와 시각을 알려주고 종, 북, 징이 저절로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 자격루는 뛰어난 기술을 토대로 이룩된 하나의 자동화 시스템입니다. 과학기술이론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지만 오늘날에 평가해도 매우 탁월한 장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자격루는 제작된 지 21년 만인 단종 3년(1455)부터는 자동 시보장치를 쓰지 못했지요. 장영실 대신 고장 난 자동장치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는 중종 31년(1536)에 만든 것으로 파수호, 수수호, 그리고 부전 등 시계장치만 있고, 자동 시보장치는 없습니다. 장영실은 어가가 부서진 사건으로 파직당했는데 그 뒤의 행적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의 이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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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486. 조선시대에는 하루 몇 끼를 먹었을까? (2005/10/28)
지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살을 빼기 위해서 밥을 굶기도 합니다. 그러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 몇 끼를 먹었을까요?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펴낸 책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보면 조선시대에는 두 끼가 기본이었다고 합니다. 점심은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계절에 따라 달랐는데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대개 2월부터 8월까지 7달 동안은 세 끼를 먹고,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5달 동안은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해가 긴 여름, 그리고 농사철에는 활동량이 많았으므로 세 끼를, 해가 짧은 겨울, 농한기에는 두 끼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겨레는 이미 운동 정도에 따라 열량을 조절하는 슬기로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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