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은 궤짝에 담아 보관해왔습니다. 그리고 실록이 서로 닿는 것을 막도록 사이에 초주지를 끼워 넣고 악귀를 쫓는 붉은 보자기로 쌌지요. 또 그 보자기에는 벌레와 습기를 막으려는 청궁, 창포 등의 한약재 가루를 담았습니다. 한 궤짝에는 15~20책을 담아 철저하게 봉인하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이렇게 자물쇠를 채운 왕조실록은 처음엔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사고에 보관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를 뺀 나머지 사고가 모두 불타자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등의 산속 사고에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었으며, 실록을 관리하는 사람조차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했지요. 오직 임금 명을 받은 사관만 궤짝을 열게 했고. 그 사관은 임금의 명을 받아 사고에 가는 것을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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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131.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입동(立冬) (2004/11/06)
오늘은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인 입동이며, 바야흐로 겨울로 들어섭니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입니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지요.
입동은 열아홉 번째 절기이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합니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 중 초후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말후엔 꿩은 드물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한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鄕約)을 보면 봄가을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 동지, 섣달그믐날밤에 노인들에게 치계미 (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습니다. 논밭 한 뙈기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 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기꺼이 금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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