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궤는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도록 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그 의궤는 임금이 볼 수 있도록 만든 어람용과 의정부·규장각·예조 등 주요관청이나 사고(史庫) 등에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나뉘어 펴냈습니다.
어람용(御覽用)의 겉표지는 붉은색 비단(고종황제 때는 노랑 표지)이고 경첩으로 묶여 있으며 내지는 고급 초주지(草注紙)를 썼습니다. 분상용 의궤는 겉표지를 삼베로 하고 내지는 초주지보다 질이 떨어지는 저주지(楮注紙)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분상용에 견주어 어람용은 반차도(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를 전문 화원이 그려 분상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어람용 의궤의 반차도는 정밀함, 가마나 의장물의 섬세한 표시, 사람의 눈매?수염의 뚜렷한 모습 등 그 가치가 대단합니다.
![](http://www.solsol21.org/bbs/images/dcmr/13/ua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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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434. 고추를 널어 말리고, 윷놀이를 하던 멍석이야기 2005/09/06
지금은 전통한식점, 전통찻집 등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멍석은 우리 겨레에게 친근한 민속품이었습니다. 멍석은 곡식을 널어 햇볕에 말리기 위해 짚으로 엮은 큰 자리였는데 월여농가(月餘農歌)에는 관도점이라고 했으며 덕석, 덕서기, 턱성, 터서기 등으로 불렀습니다. 멍석은 보통 3m × 1.8m 정도의 직사각형이지만 둥근 모양도 더러 있었고, 특히 맷돌질할 때 바닥에 깔아 쓰는 맷방석이라는 둥글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멍석은 곡식을 널어 말리는 것 외에 잔치나 상을 당했을 때, 굿판 등 큰 행사 때는 마당에 깔아 놓고, 많은 사람이 앉았으며, 명절에는 멍석에 윷판을 그려 놓고, 윷가락을 던지며 윷놀이를 즐겼습니다. ‘멍석말이’라는 멍석의 특별한 쓰임새는 민간에서 사적으로 주는 벌입니다. 특히 간통따위를 저지른 사람을 멍석 안에 넣고
둘둘 말아 볼기를 치는 형벌인 것이지요.
![](http://www.solsol21.com/bbs/images/dcmr/401~500/ms.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