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친구를 짓밟고서라도 좋은 성적을 받기를 바랍니다. 오로지 자신의 자녀가 일류 대학에 들어가서 출세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뿐 친구와 노는 것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은 이와 달랐습니다. 임금이 되려면 학문을 닦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벗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꼬빡 앉아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었지요.
그래서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에선 “배동(陪童)”을 꼭 두도록 했습니다. 배동은 원자와 동년배 아이들을 뽑아 어울려 놀면서 함께 공부하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원자의 교육에 배동을 두도록 한 것은 1402년(태종 2) 원자의 교육을 위해 성균관 동북쪽에 학궁(學宮)을 세우고 공신들의 자제를 불러 함께 공부하도록 한 것이 최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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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680. 장인이 장이로 바뀐 결과 2006/05/13
백제에서는 기와 장인을 ‘와박사(瓦博士)라고 불렀고, 6세기 후반 이들을 왜국에 파견하여 기와제작법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제 때는 와박사를 비롯한 장인들이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의 탈해왕은 자신을 본래 단야(鍛冶), 즉 대장장이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신라와 가야의 대형 고분들에서는 집게, 망치, 숫돌, 받침모루 따위의 대장간 도구들이 출토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루어 볼 때 대장장이 집단이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우받던 장인들은 조선시대엔 장이로 전락합니다. 가죽공예의 장인을 ‘갖바치’라 하고, 대장아이, 옹기장이 따위로 불리며, 상민이나 천민 등 하층 계급으로 천시를 받습니다. 장인들의 이런 신분추락은 결국 뛰어난 겨레문화가 더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맥이 끊기는 안타까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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