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문은 한치의 틈도 없이 꼭 들어맞아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고, 한옥의 문은 꼭 잘 닫아도 틈이 조금 벌어져 문틈으로 들여다 본다고 합니다. 문은 경계입니다. 만약에 틈이 없다면 문은 닫히는 순간 벽과 하나가 되고 바깥세상과 차단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문과 벽 사이에 얼마간의 틈을 두었고 그 덕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문풍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으려고 문짝 주변을 돌아가며 문풍지(門風紙)를 붙였던 것입니다.
우리 한옥의 문은 꽉 조이는 무미건조함과 단절을 거부하고 문에 발랐던 창호지와 문풍지를 통해서 융통성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을 원했던 것입니다. 박두규 시인은 <문풍지>라는 시에서 “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 온 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라고 노래합니다.
그제 밤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 숭례문 전소를 보았습니다. 불이 타 처참하게 쏟아져 내리는 서까래와 기왓장을 보면서 많은 이가 가슴을 쳤을 것입니다.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어제 그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시민은 6·25전쟁에도 말짱했던 숭례문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느냐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문화운동을 펴는 교포 조영숙 씨는 이 소식을 접하고 "이게 내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구나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대한민국은 고쳐나가야 하나…. 우리 국민이 고쳐나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긴 있나? (중략) 우리가 이러면 안 되겠죠……. 우리가 이러면…. 나라를 잃었을 때도 힘을 내어 싸우신 순국선열 분들께 죄짓는 거겠죠."라는 글을 보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