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중 연산군일기 11년(1505) 1월 11일 자를 보면 연산군이 그날 뽑힌 장악원 소속 예기에 대해 지시를 내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 뽑힌 예기들은 다 기개가 없어서 취할 만하지 못하다. 자색은 분칠로 바뀐 것이니, 어찌 분칠한 것을 참 자색이라 할 수 있으랴. 옛사람의 시에, ‘분·연지로 낯빛을 더럽힐까 봐 화장을 지우고서 임금을 뵈네.’라고 하였으니, 앞으로는 간택 때에 분칠하지 말게 하여 그 진위를 가리라.”
또 이덕무의 책 ≪사소절(士小節)≫에 “부인이 단정하고 정결함을 귀히 여긴다 함은 얼굴을 화장하여 남편을 기쁘게 함을 이름이 아니다. 화장하고 예쁘게 옷을 입은 사람은 요사스러운 여자요.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얼굴에 때가 있는 사람은 게으른 여자다.” 조선시대 정숙한 여인들은 화장한 얼굴이 아닌 민얼굴이어야 했고, 화장하는 것은 기생이나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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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477. 국악기 중 ‘축’과 ‘어’를 아십니까? 2005/10/19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 곧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는 종묘제례이고, 여기서 연주하는 음악인 종묘제례악에 사용하는 악기 중에는 ‘축’, ‘어’ 따위의 독특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중 ‘축(柷)’은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들여온 악기로 둥근 구멍이 뚫린 나무상자에 꽂힌 방망이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 소리를 냅니다.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공자에게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을 시작할 때 진고(북의 한 가지)와 함께 사용됩니다.
또 ‘어(敔)’는 엎드린 호랑이의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만들었는데 호랑이의 등에 27개의 톱니가 있습니다. 연주할 때는 9조각으로 갈라진 대나무 채로 먼저 호랑이머리를 3번 치고, 이어 톱니를 대나무 채로 3번 긁어내립니다. 역시 송나라에서 들여온 후 종묘 및 문묘제례악에서 끝남을 알리는 신호악기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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