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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에 어떤 나무썼나?

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9. 4. 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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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는 집짓기에 어떤 나무를 썼을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9. 04. 21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주몽은 부여를 떠나면서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기둥
          아래(七稜石上松下)에 부러진 칼 한쪽을 묻어두었습니다. 이는 소나무가 건축물의
          기둥으로 쓰였다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신라에서는 집 짓는 나무로
          4두품 이하는 느릅나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당시 귀족들이
          집을 지을 때 느릅나무를 좋아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 뒤 원효대사, 평강공주·온달장군 등의 많은 기록에 느릅나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우리 땅에는 느릅나무가 흔했고 기둥 등 건축재로 널리 썼다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고려의 건축물로 현재 남아있는 영주 부석사나 해인사 장경판전의
          기둥은 느티나무였고, 조선왕조에 들어오면 소나무로 궁궐을 짓고 배를 만들면서
          소나무를 귀중한 나무로 관리했지요. 이처럼 건축재에도 시대별로 다른 나무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 (월간)문화재사랑 2009년 4월호 나무 문화재에 숨겨진 역사의 흔적(박상진)


 

              

                                                                      

      ===========================================================================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899. 엉덩이나 성기를 과장한 신라의 토용  2006/12/26

 

           옛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사후세계를 믿었기에 껴묻거리 곧, 부장품이 필요했습니다.
           이 껴묻거리 중에 흙으로 사람 모습을 만들어 묻는 것을 토용(土俑)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물론 하인들을 산 채로 묻었는데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나중엔 산 사람
           대신 토용을 묻었던 것인데 우리나라 것으로는 신라토용이 있습니다. 토용은 옷과
           모자, 그리고 악기나 물건 등을 같이 표현했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상을 미루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의 토용 가운데는 젖가슴이나 엉덩이 그리고 성기 등을 과장하거나 임신한
           여성을 표현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는 아이를 많이 낳기 바라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 나라의 백성은 큰 자산이기 때문에
           다산은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인형 말고는 장식항아리, 집 모양, ‘뱀과 개구리’들도
           있습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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