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묘가 하사한 물건을 보았더니, 크기가 돈짝만 한 것 두 개가 있었는데, 흡사 돌비늘(운모)과 같고 금으로 테를 둘렀으며 자루가 달렸다. 오므리면 하나가 되고 펴면 둘이 되었는데, 노인이 두 눈에 걸면 글자가 배나 크게 보인다."
이는 조선후기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李德懋)의 책 <청장관전서 제19권, 아정유고 11>에 나온 내용입니다.
이덕무가 살았던 당시 안경은 알이 동전 크기만 한데다 안경테는 금으로 장식했고, 가지고 다니기 편하도록 좌우의 안경알이 접어지는 형태였던가 봅니다. 그리고 돋보기로 글씨가 크게 보였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조선후기에는 안경이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허리춤에 안경집을 곱게 매달아 다녔는데 당시 안경집 중에는 거북이 등껍질이거나 상어 가죽인 어피에 옻칠을 해서 매화꽃 무늬가 보이도록 한 것이 고급스러웠지요.
한글날 훈민정음 반포 재현의식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근정전 처마 밑에 웬 그물이 쳐 있습니다. "혹시 근정전이 공사중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요즈음 친 것이 아니고, 예전 건물을 지었을 때부터 쳤던 그물입니다. 그 이름은 ‘부시’인데 새들이 건물에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까치나 참새, 비둘기 같은 새가 드나들면서 똥을 싸면 보기에도 안 좋을 뿐 아니라 강한 산성이어서 목조건물에는 치명적인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하지요. 그래서 처마 밑에 부시를 쳐 새들의 드나듦을 아예 막아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본 건물 좌우의 긴 집채인 회랑과 대궐의 담(궐담) 등에는 부시를 칠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을 설치해 새가 앉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새는 건물에 문제였던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