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임금 때 펴낸 ≪한경지략≫이란 책에 보면 동대문 밖 “동묘”의 남서쪽에는 한양에서 가장 큰 푸성귀(채소)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장은 남자들이 드나들 수 없었던 금남구역이었다지요.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는 단종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단종이 죽고 과부가 된 뒤 초막을 짓고 살았던 “정업원(淨業院)”이 있었습니다. 이후 세조는 정순왕후가 동냥으로 끼니를 잇는다는 소문이 돌자 그 근처에 영빈정이란 집을 짓고 살게 했지만 정순왕후는 영빈정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다지요. 또 조정에서 식량을 주어도 완강히 거부하고, 말년에는 베에다 자줏물 들이는 염색을 하면서 겨우 풀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근처 마을을 자줏골이라고 불렀는데 장안 부녀자들이 정순왕후를 도우려고 앞다투어 몰려들었다지요. 그런데 조정에서 이를 금하자 시장을 만들고 장사하는 척하면서 정순왕후의 생계를 도왔으며 혹시 조정에 밀고할까 봐 남자들은 일절 출입을 금하였습니다.
우리 겨레의 머릿결을 빗어주던 것으로 얼레빗과 함께 참빗이 있습니다. 참빗이란 빗살이 굵고 성긴 반원형의 큰 빗인 얼레빗과 달리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빗입니다. 얼레빗으로 머리를 대강 정리한 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때로는 머리카락의 때나 이, 서캐 따위를 없애기 위해 쓰기도 했습니다. 대개 대나무로 빗살을 촘촘히 박아 만드는데 빗살도 성긴 것과 촘촘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참빗의 형태는 직사각형이 대부분입니다.
참빗은 예로부터 영암, 담양, 나주, 남원 등에서 만들었으나 현재는 오직 영암과 담양에서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5대째 참빗을 만들고 있는 영암의 이식우씨와 담양의 고행주씨가 참빗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예전엔 아침마다 어머니가 얼레빗과 참빗으로 딸의 머리를 곱게 빗어 주곤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