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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9. 9. 2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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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날개 돋친 듯 팔렸던 “박가분"

 
 
단기 4342(2009). 09. 24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예뻐지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그 여성들을 공략한 끝에 날개 돋친 듯 팔렸던 박가분을 아시나요? “박가분(朴家粉)”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에 상표 등록하여 판매한 것으로 공산품으로서는 맨 처음 만들고 판매한 한국 최초의 화장품입니다. 박가분이 전성기 때는 온 나라의 방물장수가 몰려들었고, 하루 1만 갑 이상을 팔기도 했다지요. 당시 박가분이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포장 방식이었다고 전합니다. 박가분 이전의 백분은 얇은 골패짝 같은 것으로 작게 만들어 백지로 싸서 팔았지요. 그러나 박가분은 훨씬 두꺼웠고(양), 인쇄한 라벨을 붙인 상자에 담아서 팔아 상품 가치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좋던 박가분도 유사품은 물론 외제가 들어온데다가 납 성분이 몸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기울어지기 시작했지요. 게다가 한 기생이 박가분을 쓰다가 얼굴을 망쳤다며 고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결국, 박가분은 1937년 이후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한편, 그 뒤로 화장품 광고에는 “절대로 납이 안 들었음”이라는 구절이 필수였다고 합니다.


                                   박가분




1034. 궁중요리 신선로의 유래는 정희량의 청빈정신  2007/05/17 


궁중요리의 대명사 신선로(神仙爐)는 열구자탕(悅口子湯), 구자탕, 탕구자라고도 합니다. 여러 가지 어육과 채소를 색스럽게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지요. 하지만, 신선로는 궁중요리가 아니라 원래 조선 전기 문신 정희량의 청빈정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정희량은 무오사화를 겪은 다음 속세를 피해 산중에 은둔하여 살았는데 이때 대접 모양의 그릇 가운데에 숯불을 담고 주변에 채소를 담아 익혀 먹었다고 합니다. 정희량이 죽은 뒤 이 화로가 세상에 알려졌는데 정희량이 신선의 기풍이 있었다고 하여 그가 사용한 화로를 ‘신선로’라 불렀고, 이것이 궁중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이후 채소만이 아닌 고기와 생선에 육수를 넣고, 갖가지 고급 양념을 사용해 호화스러운 요리로 변했습니다.

                                          

신선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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